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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대학교도 학교다

연구·창작 없이 취업에 파묻힌 대학, 교육의 소강상태

배움·소통의 시·공간을 제공해 본연의 진정성 되찾아야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8-10 19:22: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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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죽도록 공부하거나, 공부를 안 하더라도 엄청난 공부의 압박을 받고 산다. 대학에 들어가면 한 2년 동안 공부와 담을 쌓다가 나머지 2년 동안은 특별한 공부에 올인 한다. 그런데 이 모두 진정한 공부인지는 의문이다. 전자는 입시 공부이고, 후자는 취업 준비 공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 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는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우리 사회의 ‘부정적 전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오래전 대학 4년을 ‘교육의 소강상태’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뜻이며, 대학의 차원에서는 대학이 교육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대학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기관과 달리 다른 중요한 역할들도 한다. 대학교수는 교육 활동과 함께 ‘연구 및 창작 활동’을 하며, 자신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대학 밖의 사회에 제공하는 ‘공공 활동’을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차원에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그 역할이 왜곡된 경우가 많다는 데에 있다. 논문의 질보다 양에 집중하다 보니 속 빈 강정인 연구 활동들도 있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실적을 관리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연구중심대학’ 또는 ‘대학원중심대학’을 종합대학의 발전을 위한 길인 것처럼 외치기만 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지도 한참 되었다. 대학은 오랫동안 ‘그럴듯함’을 위해 ‘제대로 됨’을 희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연구 중심으로 가기 위해서는 건실한 대학교육의 축적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한 지적 토대 없이 고도의 전문적 연구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우리가 상기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대학교도 학교다. 이것은 초심을 되찾는 일이다. 곧 대학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대학 발생의 초기에 ‘유니버시티’의 어원인 ‘유니베르시타스 스콜라리움(universitas scholarium)’은 학자 또는 학생들의 모임을 의미했다. 학자와 학생 사이의 고리는 무엇인가. 교육이다. 교육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대학의 소임이고, 미래를 위한 희망이다. 대학은 무엇보다도 배움과 소통의 시·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같이 대학 서열이 심한 곳에서 이른바 하위 대학이 상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도 교육에 있다. 교육을 통한 자식의 변화는 부모의 마음을 움직인다. 유명 대학이 아니라도 자기가 다니는 대학에 만족하고 집에 와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전하며 학업에 열중한다면 어느 부모가 싫어하겠는가.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지방대학’이라는 희한한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이상한 가치관과 선입견을 내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괜한 자괴감을 갖고 학생들을 보는 경향이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성적으로 학생을 판단한다. 대학에서 학생의 발전 가능성을 의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선생이라면 학생의 풍부한 자산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겐 어떤 삶을 살았던 평균 20년의 인생 경험이 있다. 그것이면 교육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으로부터 학생 각자의 능력을 끌어내고 학문적·예술적으로 잘 다듬는 길, 그것이 교육이다. 이렇게 교육하는 대학은 ‘지방에 소재하는 대학’일뿐 이른바 지방대학이 아닌 것이다.

대학이 사회적 통념으로 봐서 잘 준비된 학생들만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그건 대학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이고 문화적 태만이다. 어떤 학생이든 잘 배울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지방에 소재하는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있다.
교육과 연구의 관계도 잘 생각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연구중심대학 또는 교육중심대학이란 말엔 어폐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다. 더구나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이 둘의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는 서로 삼투압적인 관계에 있다. 한쪽이 풍부해지면 다른 쪽을 채운다. 튼실한 교육을 통해 훌륭한 졸업생을 배출 못하는 어설픈 연구중심대학은 교수들만의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 사상누각과도 같다. 외국 사례에서 나온 이런 비판을 거울삼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전문 학술 분야에서 연구와 교육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성숙한 학자가 신선한 젊은이들과 교류하며 연구할 때 좋은 효과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교류의 방식이 교육이다. 이는 물론 일방적 강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밀착형·학생주도형 수업, 발표와 토론을 기본으로 하는 세미나(Seminar), 튜토리얼(Tutorial) 시스템 등 다양한 교육 방식이 있다. 교육은 지식 전달을 훨씬 뛰어넘는 차원을 갖는다. 선생과 학생이 대학 수준의 고등 교육·연구 환경에서 깊고 넓은 지적 교류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소통과 이해의 시·공간, 즉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차원도 있다. 연구는 한 세대의 성과로 충분하지 않고, 세대를 이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1세기에 설립되어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는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 대학의 현판에는 ‘알마 마테르 스투디오룸(Alma Mater Studiorum)’이란 말이 적혀 있다. 이 학교가 ‘모든 학문이 퍼져나간 곳’이라는 뜻이다. 학문을 누가 퍼뜨리는가. 제대로 교육 받은 학생들이 씨앗이 되어 퍼뜨린다. 대학에서 교육은 연구의 동기이자 연구 결과의 적용과 실용적 확산이다.

   
나는 지금 무더위 속에서도 두 달 내내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 세미나 페이퍼, 토론 서기보고문, 튜토리얼 메모, 각종 시험 답안지 등을 단 한 장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은 ‘나의 보물 창고’이다. 앞으로 할 연구와 창작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학생들이 만들어준 도서관’에 있는 것이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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