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에는 주로 야생동물의 행태를 보고 기상을 예측했다. ‘까치집 낮게 지으면 태풍이 잦다’는 속담이 한 예. 기상 변화에 민감한 까치가 바람 피해를 막기 위해 낮은 곳에 집을 짓는 데서 태풍을 짐작했다는 얘기다. 기상 관측 기술이 미개했던 만큼 천재지변에 대한 공포도 컸다.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는 요즘도 두려운데, 자연재해가 닥친 뒤에야 뒤늦게 대처하느라 분주했던 그때는 오죽했을까.
우리 역사에는 그런 기록이 넘쳐난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2년(1865년) 8월 17일 자 기사를 보자. 당시 영호남 지방에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몰아쳤다. “익사하거나 압사한 인명과 유실된 가옥이 수백에서 천을 헤아리며 선박과 염분(鹽盆) 등 민생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도 바람에 부서지고 물결에 쓸려가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참혹한 보고가 연이어 올라왔으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고종은 탄식했다. 날로 국운이 쇠퇴해가던 조선에 천재지변까지 생겼으니,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풍 기사가 150여 건, 해일 기사도 40여 건 나온다. 고려사에선 ‘큰 바람이 불었다’, ‘나무가 뽑혔다’,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굴렀다’는 등의 표현으로 기술된 태풍 기사를 80여 건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도 같은 유형의 기사가 40여 건 실려 있다. 이들 기록에는 민중의 피눈물이 배어 있다. 자연재해에 얽힌 민중 수난사인 셈이다.
제5호 태풍 ‘노루’가 대한해협으로 올라오고 있다. 최대풍속이 초속 40m를 넘는 강한 태풍이다. 북상 경로를 미루어 오는 7일께 부산 경남 울산지역이 영향권에 들 듯하다. 지난달 부울경의 평균 강수량은 120.1㎜로, 30년(1981~2010년) 평년치(298.8㎜)의 40.2%에 불과할 정도로 가뭄이 심했다. ‘노루’가 몰고 오는 비가 안겨줄 해갈은 몹시 기다려지나, 풍수해는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노루’는 별종이다. 온난화 탓인지 서진하다 돌연 타원형으로 역회전하는 등 동선이 럭비공처럼 종잡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언행을 빼닮았다. 풍전등화 같은 한반도의 처지도 겹쳐진다. ‘어찌하면 천만 칸 큰 집 지어/천하의 가난뱅이 크게 감싸는 환한 얼굴로/비바람에도 산처럼 태연할 수 있을까’.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띠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지다’) 구절이 생각나는 나날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