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상대로 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해 이목이 쏠려 있다. 국내 3대 재벌그룹의 총수가 50대 후반 나이에 이혼을 하겠다며 나섰으니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 회장뿐만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재벌가 사람들의 이혼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재벌닷컴 조사 결과 10대 그룹 재벌가만 해도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하기 위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례는 수십 건에 이른다.

백년해로를 맹세했던 부부가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는 저마다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혼이 흉악 범죄가 아닌데 무턱대고 당사자를 싸잡아 비난할 일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가의 이혼’은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재력이 사회적 등급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재벌가 사람들’은 선택받은 최상류층이다. 그들의 행동과 모습은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재벌가 사람들’에게는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한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동양의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부 ‘재벌가 사람들’의 이혼 풍경은 실망을 넘어 우려를 자아낼 정도다. 어떤 재벌가 딸은 멀쩡한 남편에게 거액을 주면서 자식과 생이별시킨 뒤 내쫓고, 어떤 재벌가 아들은 재력을 무기로 잘나가던 연예인과 결혼하고는 십 년 만에 집안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내쳤다. 어떤 재벌가의 장남은 부인 몰래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나자 아예 이혼카드를 꺼냈고, 어떤 재벌 총수는 만천하에 ‘딴 여자 생겼다’며 공개한 뒤 배우자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저급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막장드라마에 다름없다.

‘재벌가의 이혼’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40대나 50대의 재벌 2세가 많다는 점이고, 둘째는 혼인 파탄의 원인이 대부분 배우자의 외도나 부적절한 사생활이 많다는 점이다. 이는 창업주 세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창업세대 때도 재벌가 사람들의 외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례는 적지 않았다. 과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칭 ‘칠공자사건’이나 ‘가면파티사건’도 그런 사례들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혼에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명예나 체면을 중시한 측면이 더 컸다. 게다가 창업세대의 배우자는 대부분 기업을 일구는 과정에 함께 고생한 창업 동지나 다름없다 보니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은 자제했다.

하지만 요즘 재벌 2세들은 달라 보인다. 어릴 적부터 막강한 재력을 물려받아 ‘황태자’로 길든 그들이고, 배우자의 선택도 사회적 명성이나 재력을 전제하는 정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부부라는 공동체 의식을 전제로 한 애정의 교집합은 별반 없다. 이 때문에 배우자의 잘못이나 자신의 권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내력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재벌가의 이혼’이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일반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선량한 도덕적 규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이혼에 목을 매는 재벌 총수가 과연 회사 직원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가화만사성’은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 있는 덕목의 하나다. 경제적으로는, ‘재벌가의 이혼’이 기업의 경영리더십 부재나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초래할 수 있다. 한때 10대 그룹 대열에 올랐던 거대 재벌의 총수가 가정을 버리고 경영을 뒷전에 둔 채 유명 연예인이나 방송인과 수많은 염문을 뿌리다 끝내 기업이 망한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재벌 총수는 자신의 딸이 이혼하자 화풀이로 사위가 경영을 맡고 있던 회사를 아예 다른 계열사에 합병시키는 바람에 애꿎은 수백 명의 직원이 날벼락을 맞았다.

결국 ‘재벌가의 이혼’은 사회적, 경제적인 면에서도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잠재적 위험이 아닐까 싶다.

재벌닷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