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백두산의 중국 지분인 창바이산(장백산)에 올라서 일어난 일입니다. 1947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지금도 남북에서 불리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다 필름이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젊은 시인’일 때 목청이 터지도록, 가슴 터지도록 부르던 노래인데. 모든 모임의 끝에 애국자처럼 부르던 노래인데.
우리 대학생들과 중국 길림지역으로 해외봉사 나선 길에 중국의 창바이산으로 ‘관광’을 다녀왔습니다. 저에게는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이후 두 번째 창바이산 방문입니다.
창바이산은 등정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버스 타고 가서, 도떼기시장처럼 모여서 떼 지어 줄을 서서 오릅니다. 전통 알피니즘에 따르면 등정은 자기 발로 산을 오르는 일입니다. 우리 돈 5만 원 정도의 입장료 내고 구절양장의 길을 과속으로 곡예 하며 찾아가는 창바이산은 분명하게 관광지입니다. 운수 좋으면 천지 한 번 보는 관광입니다.
길림 일대 대폭우와 홍수로 전날까지 백두산 관광은 전면 통제로 불가했습니다. 때마침 길이 열려 새벽에 출발했습니다. 일행 중에 1995년 창바이산에 같이 간 시인 친구가 있어 스물두 해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와 친구에게 남은 적바림이 없어 기억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창바이산 가까이 연길공항이 있지만 그땐 김포공항에서 심양공항으로 날아갔습니다. 심양에서 연길까지 기차로 23시간을 달려갔습니다. 4인 1실의 객실이었습니다. 중국등산협회의 초청이어서 ‘편안한 편’인 여행이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 기차의 속도로 따라왔습니다. 연길에서 이도백하진까지는 다시 버스로 비포장 길을 8시간을 달렸습니다. 창바이산은 정상 300ｍ\ 앞 천문대까지 5인용 지프가 실어주었습니다.
당시 창바이산에서 남측 관광객의 행사가 허용되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울산의 최고봉 가지산에서 받아간 맑은 물을 천지의 물과 합수하며 통일이 이뤄지기 바라는 제를 지냈습니다. 중국등산협회에서 미리 조치한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창바이산에서 사진 촬영 외에는 만세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곳곳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감시원들의 감시가 삼엄할 정도입니다.
창바이산에는 관광객이 산 위에 빈틈없이 이어져 있어 사람 위에 있는 산이 아니라, 산 위에 사람이 줄을 서 있습니다. 당시 산을 오르기 전에 들린 화장실은 남녀공용에 문이 없고 칸막이뿐이어서 사용하기가 참 민망했습니다. 마주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볼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남녀가 구분된 화장실이 있어 편했습니다. 입장료 안에 환경 보호비 80위안이 있어서인지 환경보호원들이 곳곳에서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창바이산 입구에서부터 일반 차량이 통제됩니다. 그곳 버스로 10인승 승합차를 타는 장소까지 이동시켜줍니다. 그곳에서 10명의 관광객을 타는 승합차를 타고 산 바로 아래까지 실어 나릅니다. 모두 1번부터 200번 번호를 탄 승합차가 달립니다. 한 번에 2000명의 관광객을 실어가고 데려옵니다. 빠르게 올라가 줄 서서 천지 보고 빠르게 내려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려와서 장백폭포를 들릴 기회는 있습니다.
백두산의 해발은 남측에서는 2744m, 중국은 2749.6ｍ입니다. 2005년 ‘6·15 공동 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 작가 대회’ 남측 대표단으로 참석해 삼지연으로 올랐을 때 북측은 2750ｍ로 소개했습니다. 백두산은 한국, 북한, 중국의 높이가 다 다른 산입니다. 중국은 이도백하진에 우리의 혁신도시처럼 외국인을 위한 국제화 소도시인 신이도백하진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올해 연말 개통 예정으로 시속 350㎞인 중국고속철도를 깔고 있습니다.
창바이산은 국제적인 관광지로 변하고 있습니다. 북측은 백두산의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백두밀영’ ‘장군봉’ 등 김씨 부자 우상화의 산일 뿐, 49%를 가진 중국은 창바이산은 중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무서운 속도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구이도백하진 숙소에 하룻밤을 머물려고 시인 친구와 저는 소나무가 3층 높이까지 솟아 있던 1995년 당시 고택의 호텔을 찾아보았지만 흔적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스무 두 해 전 우리가 다녀온 창바이산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첫머리로 돌아가 묻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소원’을 언제 불러보셨습니까? 가사는 다 기억나시는지요? 통일이 그리 절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정치 속에서 통일의 ‘꿈’과 ‘현실’ 간 거리가 더욱 더 아득해졌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졌습니다.
시인·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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