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관련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곰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개는 곰을 미련한 동물로 여긴다. 큰 덩치에다 우둔한 것 같은 행동 탓에 영민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해서다. 동작이 굼뜬 이를 가리켜 ‘미련하기는 곰일세’라는 비유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악한 여우와는 살 수 있어도 곰과는 못 산다 ’라는 말 역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게 동물학자들 주장이다. 얼핏 느려 보이지만 곰이 먹이를 사냥할 때는 어떤 동물보다 빠르다. 게다가 지형지물도 적절히 이용하는 등 상당히 우수한 지능을 갖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대학이 실험한 바에 따르면 곰은 도구를 이용해 높은 곳에 매달린 음식을 먹을 만큼 영리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곰의 종류는 다양하다. 동북아 지역에는 반달가슴곰이 주로 산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돼 있다. 이에 정부는 2004년부터 방사를 통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펼쳤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는 개체는 47마리나 된다.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 50마리 가량이 일정한 공간에 모여 살아야 종족 번식 등의 생태계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발 달린 짐승이 가지 못할 곳은 없는 듯싶다. 지난달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사람의 간식을 먹다가 발견된 수컷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90㎞나 이동했다. 부랴부랴 포획을 해 지리산에 데려 놓았더니 얼마 전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추격이 재개됐다. 이동 과정을 보면 이 곰의 지능은 보통이 아니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에 산줄기를 따라 움직였고 물이 적은 곳을 골라 강을 건넜다. 로드킬 위험이 있는 고속도로는 터널 위를 이용해 가뿐하게 통과했다.

‘곰의 외출’이 잦아지자 정부와 동물보호단체 간 공방도 시작됐다. 환경부는 방사구역 밖에서 곰과 사람 간 예상치 못한 충돌을 막기 위해선 포획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동물보호단체는 행동반경이 큰 반달가슴곰을 지리산 언저리에만 묶어두는 것은 야생 동물의 본능을 억누르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 하지만 만약 이 반달가슴곰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후자의 편을 들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이렇게 항변했을듯 하다. “이건 줄행랑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 떠난 여정”이라고.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