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에 군사당국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에 제안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는 21일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군사당국회담과 추석에 앞서 내달 1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현안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잇달아 열자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에서 밝힌 ‘베를린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조치다. 북핵 등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대화를 통한 군사적 긴장 해소가 시급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제안은 시의적절하다.

남북관계는 지난 9년 보수정권 동안 악화일로를 걸으며 사실상 단절됐다. 2000년 이후 48차례 열린 남북군사회담은 2014년 이후 중단됐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2015년 10월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모든 남북 간 통신마저 끊긴 상태다. 핵실험 등 북한의 잇단 도발이 원인이긴 했지만 최소한의 대화 채널마저 사라져 일촉즉발의 위기가 이어져 왔다. 따라서 이번 회담이 성사된다면 남북관계 개선의 첫걸음으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북한의 호응 여부이지만 최근 움직임으로 미뤄 긍정적 신호가 없지 않다. 북한은 지난 15일 노동신문을 통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을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북과 남이 함께 떼어야 할 첫발짝은 북남관계의 근본 문제인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라고 밝힌 바 있다. 각론은 다르다 해도 대화 여지는 남겨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이 그간 군사분계선 등에서의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주장해온 터여서 양측 이해관계가 부합하는 셈이다.

그런 만큼 북한은 우리 정부의 제안에 성의 있게 화답하는 게 옳다. 회담의 대표급이나 구체적인 의제,장소에 의견을 달리 하더라도 구체적 입장을 밝힌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 또한 한반도 문제 주도권 확인 후 첫 회담 제의인 만큼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끈기 있게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자칫하다간 잇단 도발에 대한 대북 제재 공조 분위기 속에 면죄부만 주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주도면밀한 전략을 세우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