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몇 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인데 많은 우리나라 사람의 첫 번째 선택의 고민은 고등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두고 이과와 문과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자신의 진로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계열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면 자연계열, 국어와 영어 성적이 높으면 인문계열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천재가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기준도 별로 합리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 계열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했던 기준은 의외로 ‘나는 과연 말을 잘하는가?’였다. 인문계열 출신들이 진학할 수 있는 대학의 학과를 졸업해서 사회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것이고, 실험기구 또는 기계를 주로 상대하는 자연계열 출신들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말하는 재주가 썩 좋지는 않다고 여겼기에 과학 또한 그리 잘하지도 못하면서 주저 없이 자연계열 학과를 선택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고 보니 당시의 판단 기준이 무의미한 일이었고, 어떤 직업을 갖는가와 관계없이 말을 잘하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을 잘한다’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첫 번째, ‘달변’을 생각할 수 있다. 말을 능숙하게 막힘없이 하는 것으로, 말의 논리성이나 깊이가 수반된 경우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내용보다는 ‘포장’에 방점이 찍힌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 ‘설득력 있는 말’을 생각할 수 있다. 청산유수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으며 듣는 상대가 공감하게 만드는 경우인데 이 경우는 ‘진실’에 방점이 있다. 세 번째, ‘논리적인 말’이다. 말의 앞뒤가 딱 맞아떨어져서 흠잡을 데가 없고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반박하기가 어려운 경우로, ‘합리’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말을 잘하면 유리한 직업이 여럿 있겠지만 아마도 필자의 직업이기도 한 대학교수, 법조인, 정치인 등이 그 중 대표적일 것 같다. 우선 대학교수에게 있어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세 가지 유형 중에서 두 번째인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닐까? 지식을 학생들에게 성공적으로 잘 전달하고, 학생들을 적절하게 지도함으로써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수 본연의 의무이니 말이다.

두 번째로, 법조인에게는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 유형이 모두 갖춰져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에서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정치인에게 있어서 ‘말을 잘한다’는 어떤 의미일까? 정치인에게는 유난히 칭찬이 인색한 필자의 성향 때문만은 아니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보였던 언행을 감안하면 적어도 두 번째나 세 번째 유형이 아님은 틀림없다. 굳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도 ‘달변’으로 표현한 첫 번째 유형일 것 같다. 사실 ‘달변’은 본질적으로는 좋은 의미이지만, ‘내용은 없고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부정적인 뜻도 은근히 함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작년 5월 출범한 이후,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 등 격동기를 보내면서 새 정부의 고위 공무원 인사청문회, 국민의당의 지난 대선 당시 제보 조작 사건, 끊임없는 북한의 핵 관련 실험 및 사드를 포함한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 관계, 천문학적인 규모의 추경 예산 등의 처리를 위해 종횡무진 활약(?) 중인 20대 국회의원 중에 법조인 출신이 50명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50명이라면 타 직업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인원인데 앞서 필자가 주장한 3박자를 모두 갖춘, 유능한 전직 법조인들이 정치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간의 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대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은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의무인 사람들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진실한 말로 먼저 주고받은 후에 국민을 상대로 설득해주길 바란다. 진실함이 결여된 ‘달변’만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는 국민이 이미 너무 피로해 있다.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