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부산 정치권이 벌써 술렁이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민선 6기 내내 지속돼온 지역구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부산에서 38.7%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부산이 '보수 텃밭'으로 바뀐 이후 진보 후보 승리는 처음. 1970, 80년대 권위주의 시절에 강한 야성을 드러냈던 야도(野都) 부산의 반골 기질 부활을 점치는 관측도 나왔다.

여기다 70%를 넘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청신호다. "이제 부산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대선 전 대거 민주당으로 갈아탄 옛 여권 인사들까지 가세, 벌써 물밑 공천 싸움이 치열하다. 불과 3년 전 선거 때 구청장 후보마저 다 내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민주당의 선전은 부산으로선 고무적이다. 일당 독식을 가능케 했던 '묻지마식 투표', 그래서 경쟁과 견제가 사라진 일방독주식 시정과 구정. 그간 부산의 숨통을 죄어온 지역구도의 적폐 상당 부분을 청산할 수 있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군주민수(君舟民水: 백성은 물, 임금은 배).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법. 정권이 오만해지는 순간 표심은 냉정히 돌아선다. '부적격 3종 세트'로 지목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파격과 소탈 행보, 말 한마디로는 개혁을 절대 끌고 갈 수 없다. 법률을 바꿔서 제도화해야 한다. 현재 120석 민주당 의석으론 어림도 없다. 입법연대든, 연정이든 야당과의 협치 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부산 정치판을 흔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한국당 내 주류 교체다. 지난 3일 끝난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65.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5년 동안 당을 장악해온 친박계 조직력이 무색한 압승이었다. "명실상부 한국당은 홍준표당이 됐다." 이런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부산에서도 '홍준표로의 결집'이 시작됐다. 신흥 친홍계 3인방 약진설과 친박계 당협위원장 물갈이설이 대표적 사례. 홍 대표의 행보 또한 거침없다. 취임 즉시 부산 출신 최측근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내리꽂았다. "내년 1월까지, 7개월 내 지방선거 공천을 완료하겠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몰아치기에 당내 긴장도는 급상승 중이다. 지역 국회의원이 좌지우지하던 공천 관행에도 일대 파란이 불가피하다. 지역구도에 편승, '땅 짚고 헤엄치기'식 선거판이 이제 막 흔들리기 시작하는 시점. 한국당 내부로부터의 변화와 혁신만 한 처방도 없다.

반면 우려 목소리도 없지 않다. "여론조사 공천은 배제하겠다." 홍 대표가 밝힌 공천 룰의 하나다. 지난 대선 내내 여론조사에 극도의 알레르기를 보였던 그로선 당연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후보들의 능력과 민심 지지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 잣대는 무엇일까.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할 대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홍준표의 사즉생(死卽生)'이다. 차기 대권이라는 개인적 정치 욕심을 죽여야 한다. 이른바 '무심(無心)타법'이다. 희생번트도 과감히 대는 '팀 배팅' 역시 우선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제까지의 얘기가 정말 새롭게 들리는가. 물론 진보정권 등장에 따른 반사효과, 보수진영 자책골에 의한 비상 상황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하지만 한 꺼풀만 들어가면 너무 익숙한 장면 아닌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여전히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모습 말이다. 불과 두 달여 전 대선 당시와는 전혀 딴판이다. 모든 후보가 지방분권 개헌을 통한 지방의 정치독립을 외쳤다. 이젠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3년 전 지방선거 땐 최대 화두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배제 여부였다. 더는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 예속돼선 지방자치(自治)가 아닌 중앙타치(他治)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라도 있었다. 이번엔 이런 논의조차 여태 보이지 않는다. "지방정부가 징세권을 갖는 연방제 수준 분권을 추진하겠다." 지난 5일 부산을 찾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은 그래서 반갑다. 하지만 정부가 분권을 시혜라도 베풀 듯 독점 추진하는 모양새는 금물이다. 당연히 지방이, 시민이 추진 주체가 돼야 한다. 최근 일본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독주에 한 방을 먹인 것은 야당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삶을 우선적(first)으로 여기는, '도쿄도민 퍼스트회'라는 지역 정치모임이었다. 우리도 '부산시민 퍼스트회'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내년 지방선거 최대 관전 포인트다.

부산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