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당신 사장이 이 공사 맡겨 달라고 애걸복걸했어. 원래 다른 친구에게 주려고 했던 거야. 사장이 하도 잘할 수 있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맡긴 건데 어제 가 봤더니 바닥이 형편없어. 앞으로 나 말고 당신들에게 일거리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다 파산해도 나는 건물을 지을 사람이야. 나에게 잘 해 줘 봐. 이번 일 제대로만 해 봐."
눈치 빠른 이는 알 것이다. 맞다. 공사 시행업자가 시공업체 관계자를 닦달하는 장면이다. 업자가 지금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하달까. 트럼프가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시공업체에는 '항상 세게 나가야 한다'면서 자랑스럽게 소개한 일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9일과 30일 자칭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지는 워싱턴 정상회담은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빅이벤트다. 예측불허의 럭비공 같은 데다 상스러운 말투, 허풍과 허세로 가득 찬 트럼프와 모범생처럼 단정하고 절제된 언어, 몸에 밴 바른생활맨 표 문재인 대화법이 어떻게 불꽃을 튕기고 접점을 찾아갈지 궁금하다.
트럼프가 '부동산업계 제왕' '최고의 카지노 흥행가' 등으로 불리던 때인 1987년 쓴 '거래의 기술'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상대방을 후려치고 메치며 요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적어놨다.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때 쓴 책이지만 30년 뒤 대통령이 된 지금의 그의 언행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다시 '거래의 기술'을 들춰보는 이유다.
그가 '뻥' 잘 치는 허풍쟁이에다 거짓말쟁이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취임 6개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은 날이 고작 39일에 불과하다는 뉴욕타임스 분석기사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치밀하게 계산된 장사꾼의 수법이란 건 자서전 몇 장만 넘겨도 드러난다. 트럼프식 표현으로 '거래의 기술'이다. 이 점에서 그는 강하고 야비할 정도로 냉정하고 냉혹한 '거래의 달인'이다.
트럼프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거래 수법은 '지렛대 이용하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는 연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듯이 엄포를 놨다. 또 시 주석과 만찬을 하면서 시리아 공군 비행장에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떨어뜨렸다고 툭 통보했다. 긴장을 최고조를 끌어올려 놓고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벌이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시 주석에게 '이봐, 당신이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다음엔 그 뚱보 땅꼬마를 잡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은연중 보낸 것이다. 시 주석이 '100일 계획'을 통해 미중 무역불균형 시정을 약속하고, 대북 제재 카드로 화답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사람은 '브로맨스'를 구가하고 있다.
한국을 향해 트럼프가 방위비 100% 부담, 사드 비용 10억 달러 요구,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는 것도 철저하게 계산된 거래기술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지른 게 아니라는 거다. 지난달 나토(NATO) 회원국 정상들 앞에서 상호방위 조항 의무(나토 헌장 제5조)를 역대 미 대통령과는 달리 천명하지 않아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걸 보자. 당시 백악관 국방 및 안보 보좌관들은 그 내용을 연설문에 포함했으나 뺀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의도적이란 얘기다. 그래놓고는 이달 초 나토 헌장 5조를 지키겠다고 슬쩍 약속했다. 여기에 덧붙인 말이 있다. "나토 동맹은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내라!" 속셈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트럼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에게 주먹을 휘둘러 퇴학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항상 리더로 군림하려 했고, 지금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으며,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든 말든 리더가 되려고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를 관찰한 정신의학 전문가들도 일치된 의견을 제시한다.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거다. 영국의 메이 총리가 '당신의 당선은 놀라운 일', 일본의 아베 총리가 '내 골프 전략은 네버업, 네버인', 러시아의 푸틴이 '총명하고 재능 있는 지도자' 등 낯간지러운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것도 칭찬해주면 우쭐하는 트럼프의 유치함을 알기 때문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게 되치기를 당하긴 했지만 상대방의 팔을 뜯어낼 듯이 손을 세게 쥐고 거칠게 끌어당기는 악수법도 '내가 지배자야'라고 확인시키려는 동물적 본능의 발현이다.
사드, 한미 FTA, 대북정책 등을 놓고 벌이는 한미 정상회담은 말의 결전장이다. 진지한 범생이 스타일의 정공법을 구사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는 인파이팅을 하다 갑자기 아웃파이팅으로 돌변하는 변칙 공격으로 혼을 빼놓으려 들지 모른다. 트럼프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는 냉철함을 기본으로 국익을 위해서라면 달달한 립서비스와 함께 한술 더 뜬 임기응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논설주간 so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