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신발. 둘은 오래전부터 불가분의 관계다. 가난하고 배 고팠던 시절 부산은 신발로 먹고살았고, 신발공장은 부산경제의 젖줄 역할을 했다. 또 부산의 주요 신발업체들은 1960~80년대 우리나라 경제와 수출을 이끌었다. 신발은 부산의 간판 제품으로, 한국의 수출 효자상품으로 각광받았다. 그래서 부산은 신발의 메카로 불렸다. 운동화 생산량에서 세계 1위 도시가 바로 부산이었다.

그만큼 부산 신발은 성장가도를 내달렸고 황금기를 누렸다. 신발이 없으면 부산경제가 그냥 쓰러진다, 부산사람 4명 중 1명 혹은 3명 중 1명 정도는 신발과 관련된 걸로 먹고산다는 말까지 돌았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당시 부산경제 통계 수치에서 나온 표현이었다. 이후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신발 비중은 크게 떨어졌지만, 지금도 부산의 주요산업으로 부흥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런 밑바탕에는 신발노동자 특히 여공(女工)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그 시절 신발공장은 여성 인력이 대다수를 이뤘다. 속칭 '공순이'였던 그들은 지독한 냄새와 열악한 환경, 온갖 서러움과 고통 속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온종일 신발창에 풀칠을 해야 했고, 돈을 아끼느라 국수로 끼니를 때웠다. 쉴 새 없이 신발을 만지고 나면 손가락이 퉁퉁 부어 손을 쥘 수 없었고, 밤새 미싱을 밟고 나면 발이 부어서 신발을 신기 어려웠다. 화장실엔 칸막이조차 없었고, 재봉기 밑으로는 쥐들이 돌아다녔다. 피곤해 졸다가 손을 베이고 다치는 일은 예사였다. 쪼들리는 형편에 늘 외상을 달고 살았다. 만삭의 몸에도 공장에 출근했다가 그만 애를 낳은 일도 있었다.

게다가 여공들은 부당한 대우에 시달렸다. 그들이 기댄 언덕은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 문재인이었다. 문재인은 저서 '운명'에 이렇게 썼다. "그 무렵(1980년대) 부산의 주력산업이던 신발공장의 여성 노동자들 처우는 형편 없었다. 잔업 특근 모두 합해서 월급 6만~7만 원대에 그나마 체불하기 일쑤였다. 작업장 내 인격 모욕과 성희롱도 다반사였다. 생존권적 차원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고, 노조 결성을 추진하다가 집단 해고된 여성 노동자가 많았다. 자구 차원의 집단행동을 하다가 업무방해죄로 구속되는 노동자도 많았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노무현 변호사와) 둘이서 무료로 힘껏 변론했지만 구제해 주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이처럼 신발 여공들의 고된 삶과 희생이 오늘의 부산과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진정한 주역은 정치인도, 경제관료도, 자본가도 아니다. 공장에서 꽃다운 젊음을 바친 노동자들이다. 이들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발산업이 사양길로 내몰리면서 점차 잊혀졌다. 실제 신발역군들의 '진짜 이야기'는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는 과거 신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조그만 구술채록집으로 엮어냈다. 그들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와 그 시대 생활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후세를 위한 거울로 삼기 위해서다. 이들의 스토리는 하나하나 휴먼 드라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고향의 다섯 동생을 모두 공부시키고 훌륭하게 만든 사연, 타향살이가 힘들어 눈물로 지새운 시간들, 너무 서러워서 죽으려고 태종대 자살바위에 갔다가 발길을 돌렸던 일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평생 신발일을 하면서 자식들만 보고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들은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던 자신의 신발인생 스토리를 하나씩 풀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떤 분은 신발공장에서 일했던 과거가 창피하고 부끄럽다며 숨기고 싶어 했다. 신발만 보면 너무 못 살았고 배가 고팠던 시절의 생각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우리나라 신발(고무신)공장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처음 생겼다. 앞으로 2년 뒤면 한국 신발산업 역사가 100년을 맞는 셈이다. 그 오랜 세월의 중심은 부산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발노동자들의 고달팠던 삶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옛날일로만 여겨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 신발역군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번듯한 역사관도 없고 관련 창작물과 콘텐츠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신발일을 하고 있는 부산의 한 여성 노동자. 그가 14살 때 신발공장에서 실밥을 따며 받았던 첫 월급은 1만4000원이었다. 그는 "우리 서민은 왜 이리 살아도 살아도 삶이 팍팍하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든 살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작은 신발공장에서 일하며 쪽가위를 만지고 있는 할머니.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평생 신발 만드는 일을 지겹도록 했는데, 이제 더는 안 했으면 좋겠어." 시대가 바뀌고 산업현장의 환경은 크게 달라졌지만, 옛 신발 여공들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이유다.

편집국 선임기자 겸 (사)걷고싶은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