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0년 전의 일이다. 보수당 18년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1997년 5월 선거를 승리로 이끈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국민에게 뉴딜정책을 제시한다. 이른바 '복지에서 노동(welfare to work)'으로 표현되는 이 정책은 복지와 고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서로 연계해 함께 잡겠다는 취지였다. 세부 내용은 고용에 취약한 실업집단인 청년, 장기실직자, 한부모, 장애인, 중장년 등을 위한 직업 능력 향상과 취업을 위한 지원이었고 실업자 지원 파트너 프로그램 운영도 포함되었다. 주로 복지대상자에 머물던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취업에 이르게 하는 노동시장정책을 편 것이다. 나중에 영국 커뮤니티 뉴딜은 세계적 도시재생사업의 모델로 발전한다.

뉴딜의 대명사는 역시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다. 스튜어트 체이스의 1932년 동명(同名) 저서에서 따온 뉴딜은 윌슨 대통령의 새로운 자유(New Freedom)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공평한 분배(Square Deal)의 합성어로 우리식으로 직역하면 국민과의 '새로운 합의'이다. 뉴딜정책은 1929년 대공황으로 큰 사회경제적 위기를 경험한 미국 사회에서 국가의 적극적 개입으로 공공인프라의 조성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내고 국민의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지난 5월 9일 대통령선거로 문재인 정부 시대가 열렸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으로 인한 국민저항의 촛불혁명, 그리고 대통령 탄핵 및 적폐청산을 바라는 여망의 큰 물결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탈권위와 통합의 가치를 지향하는 대통령의 출발이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특권을 국민께 반납'하겠다는 공약의 실천은 시작되었고 집권 초기에 더 많은 분야에서 공약 이행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북한 핵 위협과 주변 열강의 각축, 저성장체제로의 빠른 진행, 재벌 중심의 지대추구적 경제체제의 왜곡된 관행, 심각한 양극화 구조와 중산층의 쇠락, 다양한 사회적 배제 계층의 급격한 확산 등이 그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여전히 미흡한 생활보장은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빠른 고령화 진행과 사회적 부양부담 증가, 그리고 생산인구의 감소와 세수 감소가 연이어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매우 낮은 복지지출을 해왔던 저부담-저복지의 체제에 여전히 머물러 있고 중부담-중복지로 나아가야 하지만 올바른 복지 방향의 정립과 재원마련 역시 쉬운 과제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구(舊)사회 위험을 해소할 '오래된 복지'와 신(新)사회 위험에 대처할 '새로운 복지'를 동시에 해야 하는 이중의 사회보장 과제를 안고 있다. 실업, 질병과 재해, 고령 등으로 인한 전통적 소득중단에 따른 위기가 구사회 위험이라면 새로운 사회의 위험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와 함께 돌봄의 위기, 저숙련 일자리의 증가, 광범위한 빈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다차원적 사회적 배제집단의 등장이다. 서구사회에서 최근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한(precarious) 노동자층(proletariat)인 프레카리앗(precariat, 불안정한 노동자층)이 정책적으로 크게 대두되고 있는데 이미 우리나라는 서구 사회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태이다. 특히 프레카리앗의 징후인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고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구사회 위험에 대비할 노령연금도 수혜비율과 소득대체율의 측면에서 매우 낮은 수준으로 '오래된 복지'도 미약한데 취약한 1인 가구와 광범위한 불안정 노동집단들의 폭발적 규모에 따라 '새로운 복지'에도 중층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회보장 공약은 기초연금 지급 확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아동수당제 도입과 같이 구사회 위험에 대응하는 정책도 있지만 공공부문 중심의 81만 개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고용할당제, 유연근무제 도입 등과 같은 신사회 위험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대선공약은 공공부문 중심의 일자리 확충을 강조하고 있어 노동을 통한 복지라는 블레어 뉴딜정책과 닮은 점이 많다.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이나 1990년대 말 토니 블레어의 뉴딜도 경제위기 시절 정책 집행 초기에 곧바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노동연계복지인 한국판 뉴딜을 통해 위기타파에 큰 성공을 거두길 기원한다.

신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