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한 때 학자 유향이 쓴 '설원(說苑)'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그가 '신술(臣術)'편에서 신하를 도리와 처세에 따라 육정(六正·여섯 가지 바른 신하)과 육사(六邪·여섯 가지 사특한 신하)로 분류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정작 육정보다 눈에 번쩍 띄는 건 육사다.
첫째, 녹봉만 탐내며 공무에 힘쓰지 않고 세상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눈치나 보는 사람은 구신(具臣)이다. 둘째, 임금의 말에 무조건 옳다 하면서 비위를 맞추고 아첨을 일삼는 유신(諛臣)이다. 셋째,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면서 속과 겉이 다르며 남의 단점을 들추어내고 장점을 감추는 간신(奸臣)이다. 넷째, 지혜와 언변이 뛰어나 이간질을 잘하여 혼란을 초래하는 참신(讒臣)이다. 다섯째, 권세를 전횡하며 국가의 대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중히 여기는 적신(賊臣)이다. 여섯째, 임금에게 간사한 태도로 아첨하고 불의에 빠뜨리며 붕당을 이루어서 총명을 가리어 흑백과 시비를 구별 못 하게 하며 악을 국내에 퍼뜨리고 이웃 나라에 들리게 하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유향이 2000여년 전 사람이란 걸 생각하면 놀라운 통찰력이다. 임금을 대통령으로 바꿔도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를 내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등 핵심 요직인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임기 5년을 성공적으로 이끌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낙제점을 받은 과거 대통령들도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대통령과 실패한 대통령은 어디에서부터 엇갈릴까. 당연히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대통령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품행과 도리, 처세, 국가관 등이 국가와 정권, 국민과 본인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소일 것이다.
한데 청와대나 내각에 기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대통령의 생각과 꼭 같지 않다는데서 불행의 씨앗은 자란다. 국리민복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은 정말 없을까. 국정에 참여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치인·학자 출신)과 늘공(늘 공무원, 관료 출신) 중 유향식 분류표의 육사가 없다고 정말 장담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은 임용 때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공무원 선서를 한다.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말이다. 대한민국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선서를 한다. 선서문을 찬찬히 들여다봐도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한다거나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대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충성과 봉사의 대상은 국가와 국민이고 지켜야 할 것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취임 후 첫마디에 출입기자들은 경악했다. "윗분의 뜻을 받들어 한 가지 발표를 드리겠다." 그는 평소 박 대통령을 '디그니티(dignity)하고 차밍(charming)하고 엘레강스(elegance)하다'고 했다. 말한 사람과 대상을 모르고 듣는다면 영락없는 사교계 여왕을 묘사한 여성잡지 기사다. 그에겐 대한민국보다 대통령이 먼저였다. 결국 그는 나라도 망치고 대통령과 자신까지 감옥에 갇혔다. 김기춘은 유향의 신하 분류표에 따르면 어디에 속할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은 저서 '위험한 충성'에서 정치인들이 마치 주문처럼 외고 다니는 충성심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지적한다. 그는 '정치에서 충성은 과대평가된 덕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악덕'이라고 단언한다. 정치평론가 제이콥 와이즈버그의 '대통령이 충성꾼들에게 둘러싸일 경우 그런 대통령은 고립될 뿐만 아니라 점차 정치를 패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말도 인용한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황제와 정치를 꼽으라면 중국인들은 당 태종 시대를 말한다. 태종의 태평성대는 직언을 서슴지 않은 위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그도 사사건건 토를 달고 쓴소리를 하는 위징이 거슬리자 "저 시골 늙은이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고 식식거렸다. 그러나 곧 화를 풀고 위징을 품었기에 중국 정치의 황금시대라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열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성심으로 모시되 예스맨이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격의없이 토론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이 말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청형이어서 기대를 갖게 한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충성의 대상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이란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나 임 실장, 그리고 어공이나 늘공이 마지막까지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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