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국 베이징을 갔을 때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뿌연 하늘에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스모그가 심각해지면 중국 네티즌들은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너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거리"라는 풍자글과 각종 패러디를 우후죽순처럼 쏟아낸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2013년 한 포럼에서 "최근 베이징 스모그 사태를 보면서 특별히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특권계층은 특급 물을 마셔 왔지만, 공기는 그런 특급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네티즌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PM)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부산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중국 북동지방에서 발원한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유입되면서 지난 6, 7일 부산에 미세먼지(PM10) 주의보(권역별 시간 평균 농도가 150ug/㎥이상 2시간 지속일 때 발령)가 내려진 것이다. 이후 아침마다 휴대전화 앱으로 우리 동네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9일 비가 내려 미세먼지 농도가 마침내 '보통'으로 떨어지면서 집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이도 많다. 미세먼지는 최하위권을 맴도는 한국인들의 행복지수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다. 위험한 곳은 안 가면 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공기는 피할 방법이 없다.
황사에 따른 미세먼지 공습은 이제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봄철 한때 황사의 고통을 참아 넘기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초미세먼지(PM 2.5)다. 초미세먼지는 입자 직경이 2.5마이크로미터 이하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미세먼지는 기관지와 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초미세먼지 권위자인 이노우에 히로요시 게이오기주쿠대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담배의 3대 유해물인 니코틴, 타르, 일산화탄소에 이어 제4의 해로운 물질이다. 초미세먼지는 은밀한 살인자"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3년 미세먼지를 대기오염과 함께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흡연보다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부산의 초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27㎍/㎥로 수도권인 서울이나 인천의 26㎍/㎥보다 높았다고 한다. 이는 국내 기준인 25㎍/㎥를 초과한 것은 물론, WHO 권고 기준인 10㎍/㎥의 2.7배에 달할 정도 여서 전국 7대 도시 중 1위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미세먼지는 건강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까지 실질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유통업계는 4월 말~5월 초 황금연휴가 소비 회복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세먼지로 외출을 하는 사람이 줄면서 매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향후 수년간 미세먼지는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자동차업, 조선업 등 핵심산업의 제조비용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며 의료비 부담을 가중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부활동 때 미세먼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외품 허가를 받은 보건용 마스크 착용을 꼽는다. 편의점 CU(씨유)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이달 7일까지 마스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었고 이마트에서도 이달 1~7일 마스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배(102.3%)까지 뛰었다. 하지만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검증된 'KF80' 'KF94' 등 인증 제품의 경우 장당 2000원 내외다. 개인이 하루 한 개씩 사용한다면 한 달 6만 원의 비용이 들어 가계에 큰 부담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세먼지를 막을 뚜렷한 정부 대책이 없다는 게 절망스럽다. 이번 대통령 선거기간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미세먼지라도 제대로 해결해 줄 후보'를 뽑고 싶다는 시민이 많았다. 하지만 주요 정당 후보들은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기존 백화점식 대책을 되풀이했다.
이제 대한민국호를 이끌게 된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실효성 있는 중장기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어떤 행복보다 마음 편히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싶어하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독자여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