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다 보니 삶의 특이경력을 가진 이들을 가끔 만나곤 한다. TV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나오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도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두어 달 전이었다. 한때 우리와 이웃처럼 지내던 귀촌 동기쯤 되는 봄이네가 마침내 합천 쪽에 새집을 지어 집들이를 간 적이 있다. 봄이 아빠는 서울에서 만화를 그렸지만 그것보다 농사가 더 가능성이 있다 싶어, 이른 나이에 시골로 들어와 농가를 임대하여 살고 있었다. 읍내에서도 한참 산 쪽으로 들어간 그곳에 나와 구면인 수제 탁주 제조자인 김 목수 내외분 외에 어떤 젊은 부부가 먼저 와 있었다.

수인사를 나눈 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그 부부가 전교조 출신으로 해직교사임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여자는 사회를 가르쳤다고 했지만 지금은 슬하에 아이가 셋이나 되어 생계를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자는 머리를 삭발하고 검게 탄 얼굴로 얼마 전, 시골로 들어온 지 일곱 해 만에 가족들과 인도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의 옅은 미소 언저리에서 그간의 수고와 고단함을 읽었다. 그 역시 시골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부교사로서 꽤 풍족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참교육을 외치며 올곧은 교육현장을 지키려 애쓴 열매는 그 부부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그들 앞에 단지 가난한 농촌의 현실만이 덩그러니 놓인 것을 보니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나 역시 시골로 들어온 이유가 아이들의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위해 그리고 도시의 경쟁적이고 소비적인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 그들처럼 몇 년간 경제적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 부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봄이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와 동갑내기인 심형이 혼자 살고 있다. 몇 해 전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된 그는 도시에서 크게 사업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그만둔 뒤, 충북 쪽 대안학교 교사로 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가족을 도시에 두고 홀로 들어왔다. 그와 몇 번 술을 마셔보니 과연 그는 비범한 사내였다. 아무렇게나 기른 수염과 사람을 후리는 능란한 말솜씨는 차치하더라도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누군가 버리고 간 집을 대충 수리하여 버섯을 키우며 사는 그는 산골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내 눈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다.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 시골로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그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농장에 '농사학교'를 열었다. 그는 S대 농대 출신이다. 여타의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린 그를 보면서 나는 부러움을 느끼지만 한편 걱정도 앞선다. 왜냐하면 그는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뽑고 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일반 마트에 납품되는 농산물과 가격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안중에 없이 혼자 취해 유기농에 대한 열변을 토해내는 그는 분명한 참농부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이 시대에 시골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러 들어온 사람들은 대체로 특별하고 비범한 편이다. 그런 점이 때때로 지역주민들과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노령화되고 정체된 지역사회에 다양성과 확장성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마을의 읍내에서 지역민과 귀촌, 귀농자들이 운영하는 장터가 겨우내 쉬다가 봄이 되자 다시 열렸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중국에서 가져와 최초로 이곳에서 퍼뜨렸다 하여 이름을 '지리산 산청 목화장터'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고 한편으로는 그 모임을 주도한 분들이 예전 칠십 년대에 유행했던 번안곡인 '목화밭'을 사랑하여 그리 지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건 나로서는 확인한 바 없다.

어쨌든 최초에 뜻을 같이하는 몇 분이 모여 만든 이 장터는 생산자인 농부와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장터에서 농산물을 직거래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너무 반응이 좋아 장터 운영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행사도 곁들여 밴드 회원 수만 800명에 육박하는 최고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공동체 의식이 시골에서는 가능하다는 증거이자,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 본다. 그런 광경을 보며 나는 내 소설집 '지리산 가는 길'의 맨 뒷장, '어디에서 사는 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다'라고 써준 손남훈 평론가의 날카로운 글귀가 문득 생각이 난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