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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칼럼] 오월과 동심

어른의 때묻은 영혼 맑게하는 천진난만 동심

획일적 통제보다 길을 열고 보듬어야 날개 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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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5-04 19:40:3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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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이 한창 좋은 때인가 보다.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가는 청보리밭의 풍경 사진을 나에게 보내오는 사람이 더러 있다. 바람에 쓸리는 청보리밭을 보고 있으면 먼 해역으로부터 푸른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해안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또 청보리밭을 보고 있으면 종달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경쾌한 높이로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비행이 좋고, 그 활기 있는 생명의 악보가 좋고, 맑고 푸른 하늘이 좋다. 바야흐로 세계의 생기가 일층 자라나는 오월이다.
   
오월에는 어린이와 어린이의 동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놀이공원과 회전목마와 트램펄린이 생각난다.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도 자주 듣게 되는 때이다. 나는 내친김에 동시도 한 편 읽어보고 그림책도 펼쳐본다.

이준관 시인이 최근에 펴낸 동시집에 실린 '형'이라는 제목의 동시를 오늘 재미있게 읽었다. 앞부분은 이렇다. "새 학년이 되었다/ 키도 쑤욱 커졌다/ 이제 골목에 나가면 모두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골목길을 달리다 넘어져도/ 하나도 안 아프다/ 이제 형이니까" 이 동시를 읽고 있으니 열 살 무렵의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한 살 더 먹었다고 나름 으스대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곧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고 있는 아이의 울멍울멍하는 표정도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의 동심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근에 백일장 심사에 참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남 통영에 있는 작은 절 대성암에서는 올해로 세 해째 초중고 학생들의 백일장을 열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천진불 아이들이 글 짓는 솜씨를 겨루는 조촐한 행사이다. 올해 열린 백일장에서도 순수하고 맑은 동심들을 만났다. 때가 묻지 않은 마음들을 만났다.

'하늘'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이런 글을 썼다. "오늘은 하늘이 맑다. 하늘은 파랑색일 때도 있고, 검정색일 때도 있다. 파랑색은 낮이고 검정색은 밤이다." "오늘은 해가 밝은 날이다. 근데 바람이 세게 분다. 그리고 해가 밝으니까 그림자가 잘 보인다. 왜 해가 밝은데 그림자가 보이냐면 봄이기 때문이다."

앞뒤 문장의 연결이 논리적이지 않고 좀 비약적이면 또 어떤가. 무엇보다 이러한 문장에는 어른들이 잊어버린 상상력이 샘처럼 솟아나고 있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불러도 좋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산뜻한 질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마냥 신기하고 새로운 것일 테다. 그리고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의 끝은 어떻게 되는지 기린처럼 목을 빼고 들여다보는 것일 테다.

시인 로르카는 어린이들의 영적 매력을 "전설로 무르익고/ 깃 달린 모자와/ 나무칼로 무르익은/ 어린 시절의 영혼"이라고 했고, 시인 워즈워스는 아이들이야말로 "능동적인 우주의 동숙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동시에 워즈워스는 어린이들의 영적 매력이, 무한과 대화하거나 무한을 향하는 영혼의 능력이 세월의 획일적 통제에 의해서 감소하거나 사라져간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권의 그림책을 더 읽어보자. 일본의 아동문학가 고미 타로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그림책 가운데 바다의 이쪽 해변에 서서 바다 건너의 세계를 상상하는 아이를 등장시킨 작품이 있다. 고미 타로는 이렇게 문장을 써나갔다. "바다 건너 저쪽은 밤일지 몰라. 별님이 반짝이는 밤일지 몰라. 바다 건너 저쪽은 얼음 나라일까. 바람 불고 눈 덮인 추운 나라일까. 바다 건너 저쪽은 모래밭일까. 누군가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쪽을 보고 있을까. 내가 지금 그곳을 바라보듯이. 바다 건너 저쪽에 가 보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심성과 상상력이 해안에 선 이 아이가 갖는 위와 같은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와도 친밀해질 수 있고, 기다리고 그리워할 줄 안다. 친밀해지는 일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이 마음은 매우 값지다. 관계에 대한 긍정적이고 열린 생각은 조금의 해로움도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호안 미로 특별전에 많은 관람객이 찾았던 일이 기억난다. 새와 별, 행성, 꽃, 언덕 등의 소재를 그린 호안 미로 그림의 절제된 선과 선명한 색채, 그리고 동심의 표현 등은 내게도 매우 흥미로웠고 특별했다. 그는 일본의 하이쿠 시와 선(禪) 문화, 서예 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천진난만한 웃음'이라는 제목의 타일 벽화는 일본 오사카 국립미술관에 걸려 있다.

호안 미로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의 회화 세계가 갖는 미학적 근거를 잘 보여준다. "그들(곤충들)은 마치 기호와 같다. 곤충들, 그들은 땅의 기호이다. 더듬이의 미스터리, 그 모든 것은 너무 이상한 나머지 그들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리고 새들, 이 동물들은 굉장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멋진 문장처럼 아이들은 생명세계의 비밀을 신기해할 뿐만 아니라 생명세계와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관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맺는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보복과 거친 질타와 배제가 없다. 이러할진대 동심이 더욱 자라나는 오월을 맞아서 어른들이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 없지 않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가 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울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나라이며 동포이며 어른들의 때 묻은 영혼을 맑게 한다. 오월을 맞아 동심에 대해 생각해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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