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대선일이 가까워지면서 안보와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데서부터 복지논쟁에 이르기까지 숱한 요구가 대선후보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 고용절벽을 마주한 청년에서부터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 어르신, 사교육에 짓눌린 학부모들의 아우성이 새 대통령이 될 후보들에게 날아든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들이다. 대선 후보들은 "내가 새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은 달라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다짐한다.
그러나 새 대통령은 보다 더 근본적인 요구에 답해야 한다. 이번 조기대선이 치러지게 된 원인에 대한 것이다.
이번 대선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 실시되는 보궐선거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상상하기 힘든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에 대한 단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대선의 가장 핵심적인 선택의 요소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빠진 채로 대선이 끝난다면 더 나은 대한민국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된 탓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불통'이었다. 불통은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훼손했고 급기야 대통령 자신까지 집어삼키는 결정적 요소가 됐다.
헌법재판소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국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적 의혹을 숨기고 부인함으로써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정을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저버림으로써 견제와 균형원리를 무력화시킨 반민주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전 정부는 언론의 취재를 막고, 보도를 통제했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한 기자에게는 해고와 징계가 가해졌다. 공영 언론사 경영진 인사는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청와대는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사를 상대로 13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역대 가장 많은 수치이다. 박 전 대통령은 연간 1회의 기자회견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월평균 1.72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월평균 1.5회 기자회견을 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불통을 넘어서 아예 국민과 소통을 포기하고 '장벽'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을 틀어막은 이 장벽 뒤에 만들어진 엄습한 공간에서 최순실 씨와 국정을 농단했다. 국민에게 국정을 공개하고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권력의 민낯이 속속 공개될 때마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2017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언론자유 지수를 34점으로 매겼다. 조사대상 199개국 가운데 66위로 평가했다. 2011년 70위를 받으면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전락한 뒤 7년째 같은 성적표이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지난해보다 7단계 오른 63위로 평가했다. 두 기관 모두 정부의 개입으로 한국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게 평가 이유이다.
새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유리로 된 집무실로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언론을 통제하고 만든 장벽 뒤에 어두운 공간을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은 국민에게 결정된 국정을 따르라고 하기 전에 투명하게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의 결정에 공감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국민통합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또 불통권력에 의해 희생된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 해직 기자들은 복직되어야 한다. 언론인에 대한 부당한 징계는 철회돼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언론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모든 대선 후보가 이런 약속과 함께 취임 첫날에 '시나리오' 없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공언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은 대통령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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