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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갈등과 분열 그리고 '코디네이터십'

모호한 '국민 대통합' 구호, 영도자는 전체주의 국가 특징

새 대통령 폭넓은 시각과 소통의 힘으로 창의적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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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4-27 19:19:5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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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분열, 더는 안 됩니다!" 선거철에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당연한 주장인 것처럼 많이 쓰는 말이다. 오늘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가 열변을 토하며 강조한 말이다. 갈등과 분열이 용납되지 않으니, 각기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현실에서 '국론 분열'도 안 된다. 오로지 '국민 대통합'만이 지고의 가치가 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까? '국론'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한가? '통합된 국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당연함은 종종 참뜻을 가린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존재하고 그것을 표출하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원전의 역사에서도 로마 공화정을 훌륭한 법률과 자유 시민의 국가로 만든 원동력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데에서 나왔다.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이 점을 강조하며, 정치가들이 갈등의 분란과 소동만을 보고 갈등의 조정에 따른 훌륭한 결실을 보지 못함을 비판한 바 있다.

국민 대통합은 자칫 구체적 내용 없는 구호일 수 있다. 그것도 통합이 아니라 대통합이라고 하니 더욱 알쏭달쏭하다. 굳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국민 대통합의 진의는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신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적 목표를 위해 한 번 합의한 것에 대해서는 그 합의의 실행에 시시비비를 걸지 않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합의 이전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 도발적으로 말하면 국론이 분열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우리가 국가적 과업을 이루어갈 때 통합적 힘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상황에 대응해서 합의를 이루어내고 힘을 모아 실행하면 된다. 국민이 항상 대통합되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스러운 일이다. 통합은 이루어가는 것이지, 통치행위를 위해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통치자의 과업은 통합된 국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조정하여 정책의 필요에 따라 통합적 힘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선에 나가는 정치인들이 이렇게 내용이 불분명한 것을 '강한 구호'로 외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면, 아마도 '리더십'이라고 하는 언어와 그 언어가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관념의 허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리더(Leader)라는 말에는 '이끌어 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지금은 영어를 음차해서 리더라고 그냥 쓰지만, 한때 영도자라고 번역해서 쓰기도 했다. 매우 강한 의미의 말이다. 이끌고 가려 하니까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또한 영도자의 상징성은 유아독존적 심리를 자극한다. 따라서 독선적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도자는 당연한 듯이 확고한 국정 목표를 전제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정책적 목표는 수많은 비판의 담금질을 받고 재설정되기도 한다. 정책 수행에서 확고한 목표만을 전제하면, 합의를 위한 소통을 배제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리더십이라는 의식의 틀에 갇혀 있으면 항상 다수의 단합된 집단을 미리 전제하게 된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대선 후 여소야대를 미리 걱정하고 있다. 자기편에 다수의 단합된 집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힘에 기대려는 소극적 자세이자 정치적 갈등을 조정해 나가려는 의지가 박약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지만, 전체주의 국가의 통치권자는 영도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어로 '두체(Duce)'였고, 히틀러는 독일어로 '퓌러(Fuhrer)'였다. 둘 다 리더로 직역될 수 있는 말들이다. 국민은 어떤 경우라도 항상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국민 대통합의 원칙도 전체주의의 특징이었다. 리더십의 함정은 리더십 그 자체에 잠재해 있다. 리더십은 오랫동안 '정치인의 아편'이었다. 중독되어 있으면 정치적 인식의 관점을 바꾸거나 다른 통치 방식을 생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폐해를 수정하려고 다양한 수정주의 리더십이 나오기도 했다. 공유 리더십, 분산적·협업적·수평적 리더십 등인데, 이 말 자체는 모두 형용모순이다. 이끈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정의 요체는 분명해 보인다. 이끌어 가지 말고 함께 가라는 것이다. 권한 집행을 균형 있게 분산해서 통치의 과업을 조율하라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해 당사자들과 소통하라는 것이다. 소통을 잘하려면 앞에서 끌고 가면 안 된다. 앞에 있는 만큼 뒤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잘 안 들리기 때문이다. 소통하려면 옆에서 함께 가야 한다.

언어는 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20여 년 전에 리더십 대신에 '코디네이터십'이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런데 대중적 호응을 별로 받지 못했다. 리더십만큼 매력적이지 않고 무엇보다도 힘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공인일수록 조정과 조율의 능력은 더욱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통합된 국민을 이끄는 영도자가 아니라, 나라 사람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의 조정자로서 전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치는 타협이고, 통치는 정책이다. 갈등을 조정하는 좋은 정책이 정치적 타협을 가능하게 하며, 정치적 타협은 통치의 지지 기반이 된다. 정치적으로 넓게 지지받는 통치자는 좋은 정책을 또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정치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 '창의적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창의적인 정치인은 설득력 있는 정책과 다수가 합의할 수 있는 통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도 폭넓은 시각과 다양한 의견을 평가 조정 수렴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즉 코디네이터십이 필요하다.

   
"더는 국민을 얕보는 대통령"은 원치 않는다는 한 시민의 인터뷰가 머리를 스친다. 국민도 '이끌려 가는' 것이 편하다는 전근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멋진 '정치 코디네이터'를 원할 만큼 성숙해가고 있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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