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안철수 선거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물어왔다. 그쪽하고 연이 닿으면 다리를 좀 놔 달라는 거였다. 사업가인 이 사람은 박근혜 탄핵을 목청 높이며 반대한 태극기파다. 이유를 물으니 이제 달리 방도가 없다나. 홍준표 유승민 후보가 와 닿지 않는, 길 잃은 보수의 전략적 혹은 차선의 선택이 적잖게 목격되는 요즘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선거판도다.
술자리, 밥자리는 민심의 최일선 풍향계다. 여기서부터 보수가 안철수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의 지지율 급상승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이유다. 선거는 인물, 구도, 바람 싸움이다. 지금의 '安풍'은 누가 앞장서 깃발을 든 결과가 아니다. 밑바닥에서부터 불고 있다. 허상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안철수 쪽으로 사람이 몰려 '안산인해(安山人海)'를 이룬다는 신조어까지 낳고 있다. 하나 '문전성시(文前成市)'가 쌓아 올린 문재인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충성도 높은 지지세가 떠받쳐온 대세론이 쉽게 꺾일 리 있겠는가. 문, 안 2강 구도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밴드웨건' 혹은 '언더독' 두 개의 효과 중 어느 쪽이 발현되느냐를 지켜보는 것 또한 관전 포인트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보듯 44.8%로 우위를 점한 문재인한테로 유권자들이 쏠리는 밴드웨건 효과는 앞으로도 유효하다. 스포츠 스타 체육인, 기무사령부 출신 지휘관 등의 문 지지 선언이 그런 예다. 축제 등 행렬의 가장 앞에서 밴드를 태우고 흥을 돋우는 마차에 올라타려는 심리의 작동은 문재인의 숙제인 확장성과 연결돼 있다.
밑에 깔린 개가 이겨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경쟁에서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언더독 효과가 안철수에게 나타나면 1948년 미국 대선의 극적인 결과가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해리 트루먼이 4.4%포인트 차이로 토머스 두이를 물리친 역전승이 얼마나 놀라웠으면 언더독 효과라는 분석이 나왔을까.
반기문, 황교안, 안희정에게로 떠돌던 보수표를 홍준표와 유승민이 흡수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세탁을 해도 '박근혜 국정 농단 세력'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세월호까지 떠올라 적폐 청산과 정권 교체 열망이 커졌다. 이념의 축과 지역 구도가 무너진 '무중력(無重力) 대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우파, 좌파 프레임이 먹힐 리 있겠는가.
이러나저러나 대선판은 변화무쌍하다. 하룻밤 사이에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는 상전벽해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6~7%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안철수 아닌가. 홍준표에게도 기회는 남아 있다.
아들 특혜 채용 시비와 묻지마 거부감(문재인), 진보와 보수 사이 위태한 줄타기(안철수), 거친 입(홍준표)은 각자의 위크포인트다. 특히 정유라 때문에 자식 문제는 보통 민감한 사안이 아니다. 안철수는 논란이 된 딸 재산을 공개해 털어버렸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앓고 있는 문재인과 대비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사드 배치 입장 등 대북관에서 발을 헛디디면 안철수 지지율은 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안보는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이슈다. 미국이 급파한 칼빈슨 항모전단이 16일쯤 한반도 인근에 도착한다. 북한 미사일 요격 등 훈련을 위한 것이어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가 "한반도 항공모함 배치는 북한 추가도발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는 등 군사행동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한국 대선의 키를 트럼프와 김정은이 쥐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경제, 사회 문제로 판세가 출렁이기는 어려워 보이는, 기-승-전-안보 선거 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유권자의 시간이 왔다. 어제 한국기자협회·SBS 초청으로 첫 합동토론회가 열렸다. 안보·경제·적폐 문제를 놓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홍준표는 평소 자신의 직설화법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유승민과 심상정은 차별화를 통해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지지율을 떠나 괜찮은 후보들의 5인 5색 토론회를 지켜보는 것은 유권자 입장에서 이번 대선이 행복한 이유다. 하이라이트가 될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세 차례 TV 토론회는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및 스탠딩 토론 방식으로 결정돼 긴장감과 역동성이 높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합동토론회는 어느 때보다 표심을 흔드는 큰 변수가 되리라 본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국민이다. 훅 갈지, 확 뜰지는 무려 92%가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들의 엄중한 검증과 분석에 달렸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누구 귀가 큰지를 보려한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국정을 원만히 수행하려면 국회의원 의석 분포상 연대가 불가피한데다 무엇보다 화합과 통합의 시대로 가야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소통이 중요하고 귀가 활짝 열려 있어야 하질 않겠는가. 불통은 박근혜로 족하다.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