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라는 단어는 귀에 익은 이가 많다. 주당이라면 18세기 아일랜드의 아서 기네스에 의해 탄생해 현재는 전 세계에 널리 이름을 알린 흑맥주를 떠올린다. 호사가라면 기네스 맥주를 생산하는 기네스양조회사의 의뢰로 만들어져 1955년 첫선을 보인 기네스북을 떠올릴 테다. 당시 영국과 세계의 최고기록을 담은 이 책은 초판본부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때 1억 부 이상이 발매되고 현재도 30개 이상 언어로 100여 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기록을 세우는 이가 있어 요즘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생명이 위험한 행위는 등재하지 않는단다. 그런데도 기네스 월드 레코드로 바뀐 이름의 이 책에 이름을 올리려는 이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일에 관심을 두는 이도 많아 미국 텍사스 주에는 기네스 기록을 모아 놓은 기네스세계기록박물관까지 만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도 기네스 인증을 받으려는 사람이 적지 않고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기록 달성을 위한 이벤트를 벌인다. 그중 기네스 기록 달성으로 홍보 효과를 거둬 부족한 관광 콘텐츠를 보충해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지자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른 목적으로 하다 보니 기록감이 돼 등재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기네스북 등재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울산시 울주군은 여섯 번의 시도 끝에 2011년 높이 223㎝의 외고산 옹기를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린 바 있다. 당시 기네스에는 옹기에 대한 심사기준이 따로 없어 '가장 큰 토기 단지'의 최소 사양 조건을 수직 높이 2m로 하는 인증 타이틀을 새로 만들어 심사를 통과했다. 이 옹기는 울산옹기박물관에 기네스 인증 최대 옹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시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충북 괴산군의 가마솥은 지자체의 기네스북 등재 욕심이 부른 참사로 알려진다. 괴산군은 5억 원을 들여 만든 가마솥을 세계 최대 조리도구로 기네스북에 올리려다가 이미 호주에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어 등재에 실패했다.
꼭 기네스에 등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지자체의 최고 최대 기록에의 집착은 유별나다. 단순하게 기록만 앞세워서야 당장 화제를 모을지는 모르나 오래 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자체마다 비슷한 콘셉트의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관광자원을 갖추려 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차별화한 콘텐츠로 보이지만 실상은 '창의성 없는' 따라하기나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따라하기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스카이워크가 그렇고, 걷기코스 조성이 그렇다. 처음 시작하는 한두 곳 외에 뒤따라 하는 곳까지 제대로 관광자원으로 기능할지는 미지수다. 남이 가진 떡이 커 보이고 맛있어 보이기 때문에 뒤늦게 따라나섰다가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의 세계를 본다면 따라하기는 단기간에 초기 투자비용을 줄이고 인기에 편승해 쉽게 수익을 올리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레드오션이 된다.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레드오션에서 허우적대다가는 수익이 점점 줄다가 급기야는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공의 영역에서는 이렇게 정리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계속해서 자금(세금)을 투입할 수 있고 딱 부러지게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경북 대구지역의 명산 팔공산에 '국내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를 설치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또한 지자체들이 잘 걸리는 최고·최대병에, 따라하기병에 같이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화권 관광객을 끌어들일 핵심 관광자원으로 구름다리를 설치하겠다면서 대둔산의 금강구름다리처럼 한해 국내외 관광객 수십만 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세웠다.
생태계 훼손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관광객 유인 효과와 경제효과만 내세우는 게 왠지 부산에서도 낯설지 않은 방식이다. 대구 팔공산 못지않게 빼어난 자연자원을 갖춘 부산도 이런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고 하는 게 케이블카나 스카이워크 같은 인공시설물들이다. 특정 지역에서 만든 관광시설이 좀 효과를 본다 싶으면 곧 다른 곳에도 들어서는 걸 보면 한정된 자연자산을 활용하는 데 좀 더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도 따라하기병에 걸려 엉뚱한 인공시설물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지. 왠지 팔공산 구름다리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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