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궐위된 지금 우리의 처지는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을 더 한층 우러러보게 한다. 퇴임 전 지지율 60%는 백악관 8년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성공한 통치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 땅에선 꿈같은 얘기다. 한데 더 꿈같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위로 3명이 더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빌 클린턴, 로널드 레이건은 퇴임 시 지지율이 71%, 65%, 64%에 이르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은 어떤가. 나라의 체질을 바꿔놓고 국민 87%의 박수를 받으며 권좌에서 물러났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사회 풍토에선 가히 언감생심이다.
8 대 0 헌재 결정을 접하면서 다시 자문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까? 물음만 있고 해답이 없는 상황의 반복은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선거 때마다 극명히 갈리는 지역주의, 이념과 정책보다는 대통령 지원 부대 성격이 강한 취약한 정당구조는 통치의 성패를 가르는 사회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사저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보좌를 자처하고 나선 친박 세력을 두고 '삼성동 십상시'라는 등의 비판이 일고 있는 게 좋은 예다. 그들은 인간적 도리라 하지만 속내는 편 가르기를 통한 정치적 재기에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만하다. 실패한 대통령을 만든 반성과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으니 최순실과 거기서 거기다.
대통령이 사실상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우리나라 통치 구조에서 불통은 필연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 갈 길 내가 알아서 간다'는 폐쇄성이 더욱 심해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소통의 등한시는 실패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소득이다.
격의 없는 자리를 좋아하던 정치인 노무현이 대통령에 오른 후에는 아래로부터의 직언과 토론이 이상하게 어려워졌다는 유시민 작가의 소회는 의미심장하다. 청와대라는 절대권력 환경이 자연스럽게 벽을 만들더라는 것이다. 하물며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박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어땠을지 대략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큰일은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이상 징후가 계속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재난이나 사고 현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대형 사건을 설명하는데도 딱 들어맞다. 역대 대통령 너나없이 막판에 친·인척 비리에 휩싸이는 불명예를 안은 것도 사전 징후들을 가볍게 넘긴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도 그래서 재앙 수준이 된 것 아닌가. 하인리히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실패한 대통령만 양산하는 우리 정치만의 특수한 요인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극복하는 길은 권력 분산을 위시한 정치·제도의 개혁이지만 종국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통령으로서의 기본적 소양과 신념, 국정운영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점에서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문은 앞으로 성공한 대통령을 보고자 하는 국민적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준거틀로 평가하고 싶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남용을 통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면서 둔감하게 여겨온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도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강제 모금 등 일련의 사태를 통치 행위였다고 줄기차게 항변한 바 있다. 하지만 헌재는 그런 것들이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중대하게 위배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나. 이는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처신의 기준선이 될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의 오남용을 묵인 또는 불감하게 받아들인 풍조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촛불은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을 준엄하게 꾸짖은 헌재의 결정문은 여기에 기막히게 부합한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임을 두고두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 성공한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에 대한 해답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을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20차례에 걸쳐 타오른 촛불을 통해 성숙된 민주주의의 가치와 국민주권주의의 확립은 고귀한 것이다. 이런 의식을 토대로 헌재 결정문을 곰곰이 되새겨 차기 지도자 선택의 틀로 삼는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유권자의 수준이 한껏 높아지고,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후보들의 마음가짐 또한 업그레이드된 상황에서 '장미 대선'이 치러진다. 성공한 대통령의 문이 열리리라 기대해 마지않는 이유다. 강조하지 않아도 이제는 정말 대통령을 잘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국민 대다수가 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학습효과'가 이번 조기 대선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또 우리는 실패한 대통령을 보게 될 확률이 높다.
대기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