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나는 차를 몰고 가다 길을 잃었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못 보던 이상한 건물을 만났다. 공사 중인 건물이었는데 안내판에 적힌 문구를 보면서 뭐야, 라고 한마디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깜깜한 밤중,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급하게 읽었던 공사 안내 문구 중 생각나는 건 '강제'라는 단어뿐이었다. 그 후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그 건물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그 건물이 지역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신문을 통해 한밤중 얼떨결에 만났던 '강제' 건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장도 조타수도 없이 물 위에 떠도는 배처럼 표류하던 역사관이 마침내 2015년 12월 10일 개관하게 된 것이다. 이 역사관을 부산에 설립하게 된 건 강제동원 출발지가 부산항이었고 경상도 출신 피해자가 많아서였다고 한다.
한밤중 길을 잃고 만났던 건물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다시 찾게 된 건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 기획전 광고를 보고 나서였다. 일본의 '우토로'를 방문하고 온 터라 그곳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을 때였다. 그 어느 밤과는 달리 유엔로를 지나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유엔기념공원, 평화공원, 부산박물관과 근거리에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금세 도착했다.
다소 높은 지대에 위치한 탓인지 아직 홍보가 되지 않은 까닭인지 그날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는 나 외에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다. 넓은 주차장과 남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담소를 나누기에 참 좋은 공간들…. 혼자 그 모든 것을 독차지하기에는 참 아까웠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이들의 사연과 편지 등을 둘러보던 중 그 무엇보다 경악한 사건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조선인 7000여 명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1945년 8월 24일 원인 모를 폭발사고로 침몰한 사건.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한 후 부산항을 향해 가던 배가 돌연 방향을 틀어 교토 부 마이즈루 항으로 기항하던 중 폭발과 함께 침몰했는데 일본인들은 미국이 깔아놓은 기뢰에 의해 침몰한 우발적인 사고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조선인 징용자들을 수장시키기 위한 그들의 고의적인 격침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줄 증거가 넘쳤다. 발표된 공식적인 사망자 수와는 달리 실제 사망자 수는 5000여 명이 넘을 것이라는 자료도 많았다. 현재까지 이 사건에 대한 어떤 조사나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갈 기쁨에 들떠 배를 탔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고 만 것이다.
'일본 교토에는 끊어진 하수도에서 모기가 들끓고 비라도 내리면 질퍽한 도랑이 흘러넘쳐 집 안팎이 침수되는 마을이 있습니다. 1988년에야 상수도 시설이 설치됐지만 아직도 펌프로 우물물을 길어 사용하는 집이 한 집 걸러 있는 우토로 마을입니다. 1941년 일본 정부가 교토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한 1300여 명의 조선인이 함바(밥집)를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형성된 마을. 전쟁이 끝났지만 어떤 보상이나 조치도 없이 방치된 사람들. 편견과 차별 속에 중노동밖에 일거리가 없어 하층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이야기'.
기획전 전시실 안내판에 쓴 설명문을 읽고 우토로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 얼마 전 우토로를 방문해서 보고 들었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곳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나라 잃고 당했던 치욕과 설움은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은 그들뿐이 아니다. 위안부의 경우 일본 패망 후 자신들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증거를 지우기 위해 일본군들에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군과 업주에게 버림받기도 했다. 귀국한 위안부 역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에서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기도 했다. 현재까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소녀상을 둘러싼 근래의 여러 가지 사건이 중첩돼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무도 찾지 않은 텅 빈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나와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한 가지 생각이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