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은 기린, 용, 거북과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불리며 옛날부터 신성한 대접을 받았다. 수컷 봉(鳳), 암컷 황(凰)을 합쳐 봉황이라 했는데 상서롭고 고귀한 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해서인지 중국 문헌마다 그 생김새를 다양하고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다. 머리 하나만 해도 기러기, 닭, 뱀 등 범접할 수 없는 형상으로 나뉘니 가히 새 중의 왕으로 불릴 만하다.
상상의 새답게 모양은 다르나 봉황이 주는 상징과 의미는 한결같다.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중국 전설 속의 영험한 산인 곤륜산(崑崙山)을 지나는데 세상에 한 번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게다. 난잡하게 날지 않고, 오동나무에만 내려앉으며,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해서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荀子)가 한마디했다. "왕의 정치가 백성의 삶을 사랑하고 죽임을 미워하면 봉황이 나무에 줄지어 나타난다"고 말이다.
봉황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인 의식 속에서도 으뜸의 새로 인식됐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봉황 베개, 구름 속에서 네 마리 봉황이 노리는 고려시대 청자상감봉황문대접은 선조들의 봉황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전용 휘·표장에 봉황이 상징 문양으로 들어간 것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그러다 지금의 무궁화와 봉황이 어우러진 휘·표장이 대한민국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67년 1월 대통령공고 제7호 '대통령표장에 관한 건'에 의해서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다.
청와대 경내엔 늘 태극기와 함께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가 걸리는데 헌재의 탄핵 인용 직후부터 내려졌다. 대통령이 부재하다는 뜻이다. 봉황기조차 지키지 못한 상황까지 오고 보니 애석하고 씁쓸하다. 내려진 것은 깃발뿐만 아닐 것이다. 봉황은 백성을 다스리는 군왕의 덕목을 상징하기도 한다. 덕(德)·의(義)·인(仁)·신(信)이 바로 그것.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또한 송두리째 잃은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가면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깃발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기관과 관공서, 재외공관에 걸린 인물 사진도 다 내려졌다. 각종 훈·포장이나 국정서류에서도 이제 박근혜라는 이름은 지워질 것이다. 그의 인사말과 기록 등이 남아 있는 청와대 홈페이지가 탄핵 이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해서 말들이 나오는데 이 또한 조속히 수정될 터다.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가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이뤄지는 걸 목도하는 것 또한 역사의 교훈이리라.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