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지난달 3일 1차 변론을 시작으로 모두 16차례의 변론이 종결됐다. 오늘로 예정됐던 최종변론이 우여곡절 끝에 오는 27일로 연기됐지만 두 달 가까운 대장정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제 박 대통령이 과연 최종변론일에 출석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사안을 다루는 만큼 1차 변론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통령 측을 변호하는 대리인단의 구성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12월 16일 4명 선정으로 출발한 대리인단은 1차 변론이 시작되기 전 11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 이후 1차 변론기일인 지난달 3일부터 계속 추가되면서 모두 18명의 매머드급으로 화려한 진용이 갖춰졌다. 게다가 후반에 투입된 변호인들은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출신 등으로 쟁쟁한 면면을 자랑했다.
아무려면 대통령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이 정도의 호화군단은 있어야지. 탄핵에 찬성하건 아니건, 변론 전부터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 건 당연한 일이다.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이야 어떻든 이 정도의 법률 전문가들이라면 또 다른 논리가 만만찮을 거라는 예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는 이상하게 흘렀다. 법정에서 법리 논쟁은 점차 사라지고 정치 선전과 퍼포먼스만 난무한 것이다.
한 변호인이 헌재 법정에서 변론 전 기도를 하는 모습은 그나마 봐줄 만했다. 종교적인 의례를 떠나 의뢰인의 무죄를 바라는 변호인의 '숭고한' 마음마저 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법정에서 돌연 태극기를 펼쳐들어 흔들다 저지당하기도 했다. 하긴 대통령 대리인단 신분으로 탄핵 반대 집회에 태극기를 두르고 단골로 참석하는 인사인지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이른바 가짜뉴스를 근거로 대며 법리 논쟁보다는 색깔론에 치중하는 등 기행을 이어갔다.
여기까지야 한 개인의 일탈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법정은 점차 조직적인 여론전의 마당으로 변질돼 갔다. 특히 후반에 가세한 원로 법률가들일수록 더했다. 변협 회장 출신 변호인은 당뇨병을 이유로 변론시간 연장을 요청하다 거부당하자 재판관에게 고성을 내질렀다. 이도 모자라 이틀 뒤엔 발언대에 초콜릿 등을 갖다놓고 1시간40분이나 필리버스터식 변론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 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섬뜩한 말까지 쏟아냈다.
누가봐도 헌재 재판관의 심기만 건드리는 불리한 언행이고 대리인단 또한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막말 변론에 치중하는 이들의 노림수 또한 이미 다 드러나 있다. 탄핵 심리 지연전략이야 헌재 측의 제지로 이미 무산됐다. 결국 탄핵 심판에서 법리보다는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며 헌재의 공정성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다.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야 어떻든 콘크리트 지지층만을 결집시키고 탄핵 이후 불복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헌재의 명예와 권위야 나락에 떨어지건 말건 대통령을 살리고 보겠다는 대리인단의 충정을 생각하면 이런 무리수를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변호인이야 어차피 의뢰인을 위한 존재 아니던가. 게다가 그들과 신념을 같이한 일국의 대통령을 변호하는 판에 물불을 가릴 게 아니다. 어차피 이판사판으로 치닫는 변론에 조금씩 익숙해져 온 터라 이제는 다소 무덤덤해질 정도도 됐다.
하지만 이 말 만큼은 그냥 넘기기 힘들다. 대리인단 대변인 격인 이중환 변호사의 언급이다. 그는 대통령의 헌재 출석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이 국가의 품격을 위해 좋겠느냐"고 답했다. 국가의 품격, 즉 국격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않는 게 옳다는 얘기다. 도대체 대통령 신문이 국격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어안이 벙벙하다. 대통령 때문에 빚어진 탄핵심판에 당사자가 출석하는 게 국격에 맞지 않다는 그의 말은 대리인단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주는 화룡점정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국격을 운운하기에 앞서 변호인의 품격부터 지키는 게 옳았다. 아무리 사태가 불리하게 전개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 헌법기관인 헌재의 명예와 권위를 송두리째 뭉개놓고 감히 갖다붙이는 말이 국격이라니. 피의자 신세인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자고 국격을 들먹이는 국내 최고 법률 전문가들의 인식이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그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국격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국격을 땅에 떨어뜨린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따져보자는 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다. 그나마 대통령이 최종변론에라도 나서는 것만이 한 줌도 남지 않은 국격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하긴 그 많은 국격 회복의 기회를 대통령 스스로 발로 차버렸으니 뭘 더 기대한다는 것도 우습긴 하다.
논설위원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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