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던 중 고래에게 삼켰다. 배 속으로 들어가 보니 먼저 먹힌 몇몇이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옆에서는 옹기장수가 옹기지게를 세워 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실수로 지게를 건드려 옹기가 박살 났다. 파편에 찔려 고래는 죽었고, 사람들은 옹기 조각으로 배를 째 탈출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고래 관련 민간설화다. 거대하다는 말만 들었지 보지 못했기에 상상력이 곁들여져 과장된 민담이 생겨난 게다. 하기야 구약성서의 선지자 요나도 고래 배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 그땐 생각 이상으로 덩치가 컸을지도 모를 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래는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다. 멜빌의 '백경' 등 문학작품 소재로도 즐겨 쓰인 이유겠다. 타락한 천사와 사탄 이야기를 다룬 존 밀턴의 '실락원' 속 고래 표현은 자못 인상적. '살아 있는 창조물 가운데 가장 거대한 짐승이 리바이어던이다. 깊은 물 속에 산허리처럼 길게 드러누운 채 잠을 자거나 헤엄을 치는데 마치 대지가 움직이는 것 같다'. 리바이어던이 곧 고래다.
땅에서 살던 원시 포유류가 먹이를 찾아 바다로 가서 적응했다는 고래 진화론은 진짜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남기곤 한다. 알을 낳는 여타 물고기와 달리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아가미가 아니라 수면 위로 올라와 허파로 숨을 쉬는 것은 네발 포유류의 특징인데도 말이다. 앞다리가 가슴지느러미로 바뀌어 배의 키와 같은 조타 기능을 하게 됐고, 몸의 털은 사라져 물 저항을 줄이는 등 형태적·생리적 변화를 겪었다는 학설도 의문을 완전히 잠재우진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육지를 버리고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오늘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결정적 비밀이 하나 풀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정현 박사가 바다 환경에 적응하는 데 기여한 고래 유전자를 처음으로 밝힌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실은 것. 내용인즉슨 섬유아세포성장인자(FGF23)라는 유전자가 고래의 골밀도를 현재 수준으로 낮췄다는 게다. 육지 동물이었을 때는 골밀도가 높았으나 바다에서 크게 감소한 덕분에 부력을 얻었다 한다. 고래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면 FGF23 유전자가 활성화돼 뼈를 강하게 하는 칼슘을 몸 밖으로 배출시켰고 그 결과 골밀도가 줄었다는 설명. FGF23 유전자는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저산소증과 같은 인간 질병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송창식의 노랫말처럼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