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사극이나 역사물을 좋아하면 사인검(四寅劒)이라는 용어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사인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제작된 4마리의 호랑이를 상징하는 의장용 검(劒)이다. 검의 칼날 표면은 순금으로 여러 자의 한자와 별자리를 상감기법으로 조각해놓은 용맹과 신비를 나타내는 검이다.

사인검은 그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4개의 인(寅)이 겹쳐야 하기에 12년마다 돌아오고 우수한 검을 만들기 위해 재료 선정부터 문양, 글귀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성으로 만든다.

사인검은 왜 이런 특수한 날에 특정한 시간에 만드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는 인(寅·호랑이)이라는 용맹함을 상징하는 특별한 시간에 제작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검을 만드는 과정을 금속공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제조공정의 특별함을 가미해 검의 특성을 극대화하려는 의미도 있다. 특히 인월은 1년 중 가장 추운 음력 정월이고 인시는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낮은 시간대인 새벽 3~5시인데 이 가장 추운 계절, 추운 시간이 금속 제조공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금속재료를 배우는, 특히 새로운 금속 신소재를 개발, 설계하는 재료공학도가 가장 기본으로 배우는 교재인 '재료공학과 과학' 1장에 보면 재료공학 4요소라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다. 그것은 어떤 재료를 이용해 실제품에서 성능을 발휘하려면 '공정-구조-특성-성능'의 4단계를 잘 이해해야 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새로운 소재가 어떤 특성을 발현하고, 우수한 성능이 구현되려면, 그 재료가 최고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최고의 특성을 가지려면, 재료의 미세구조(원자들의 배열과 내부조직)가 치밀해야 한다. 이 치밀한 미세구조를 위해서는 제조공정에서 최적의 방법으로 제품을 만들어야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요즘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찾아보기 힘들지만 예전에 시장 한쪽에 있던 대장간에서 농기구 호미 낫 쟁기 등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대장간에서는 강도가 높은 단단한 생활용품, 농기구를 만들 때 철 덩어리를 숯과 석탄이 훨훨 타고 있는 불 아궁이에 넣고, 아주 벌겋게 고온으로 가열한 다음 집게로 꺼내 모루 위에서 쇠망치로 강한 힘으로 두들기면서 모양을 만들어낸다.

모양이 잡히면 이후 찬물에 갑자기 집어넣어 식히는 모습을 많이 봤을 것이다. 이것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때 붉은 철 덩어리의 온도는 1000도 내외가 되고 갑자기 찬물에 식히는 것은 내부에 열 충격을 가하여 원자들이 단단하게 결합하게 하거나 조직을 치밀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를 우리는 담금질(급랭처리)이라고 한다. 담금질을 여러 번 반복하면 재료 내부는 더욱 치밀한 조직이 되고 따라서 우리 실생활에 유용한 단단한 용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제조공정을 금속공학에선 단조라 한다.

금속제조 공정은 앞에 언급한 대로 재료공학 4요소 중 가장 첫 단계이고 이것을 잘 선택, 실현해야 우수한 성능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금속 덩어리를 고온에서 차가운 물에 급랭하는 과정을 우린 재료의 열처리 공정이라고 하는데 이들 열처리 공정에는 앞선 담금질, 풀림, 불림, 뜨임 등이 있다. 특히 담금질에서는 급랭 조건 즉 냉각속도와 온도 차이(가열온도와 냉각온도의 차이), 담금질 횟수가 중요하다. 당연히 냉각속도와 냉각 온도 차이가 클수록, 횟수가 많을수록 강도가 증가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사인검 제조에서 인월, 인시는 계절적으로 가장 온도가 낮은 환경이기 때문에, 큰 냉각온도 차로 인해 검의 우수한 특성을 기대할 수 있다.

금속재료 중 우리 주변에 가장 많이 쓰이는 철강 재료는 앞서 말한 다양한 열처리와 가공 과정에서의 담금질에 의해 내부 조직이 치밀해지고 단단해진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인생의 삶의 궤적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학창시절, 젊은 시절에 자신의 삶을 단단히 담금질하면서 경험을 쌓고 실패에도 인내할 수 있는 내성을 쌓는다면 인생의 성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것이다.

물론 타고난 금수저가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담금질해가면서 고생한 흙수저의 작은 성공이 더욱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언급한 사인검처럼 수많은 담금질과 가공에 의해 많은 금속재료의 특성이 향상되듯이, 젊은 시절 고생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진다.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