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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우토로 마을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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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2-17 19:09:2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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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에서 만난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재일교포 3세 동포생활센터 대표 김수환 씨와 재일교포 1세로 마을 최고령자인 88세 강경남 할머니. 그의 고향은 경남 사천이었다. 현재 우토로에 사는 조선인들은 65세대 150여 명으로 모두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다.

우토로는 1941년 교토 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재일 조선인 1300여 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 해방되자, 한반도의 사회·정치적 혼란과 일본 정부의 반출재산 제한, 기타 생계문제 등의 사정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조선인들이 그곳에 남았다. 그들은 혹독한 노동에 대한 보상은커녕 식량 배급도 끊긴 채 우토로에 방치되었다.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다. 차별도 심했다.

그들은 지원이라곤 일절 없는 곳에 버려지다시피 남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지금까지 서로 도우며 살고 있다. 주민들은 그곳에 1946년 '구제초등학원'을 설립했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도 뜻을 모아 지은 학교는 1949년 일본 정부가 폐쇄령을 내리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는 정신적 문화원 노릇을 했다. 지금 그곳은 우토로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우토로 동포생활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우토로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98년이다. 1989년 군 비행장 건설을 맡았던 군수기업이 민간 부동산업자인 서일본식산에 땅을 매각했고, 서일본식산은 주민들에게 강제 퇴거할 것을 요구하면서 '건물수거토지명도'소송을 제기했다. 마을 주민들은 우토로 지구를 조선인 거주 지역으로 개척한 사실을 들어 시효취득을 인정할 것을 호소했지만, 원고승소 판정이 내려져 퇴거가 결정되었다. 우토로의 비애는 우토로 매입을 위한 모금 캠페인에 불을 붙였다. 그 결과 2010년 우토로 마을 6000평 중 2000평을 매입하여 강제퇴거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곳을 지난 1월, 부산의 문인 20여 명이 찾았다. 문학기행의 주제인 디아스포라의 두 번째 방문지였다. 문인들이 우토로의 역사를 듣기 위해 둘러앉은 동포생활센터의 이름은 '에루화'였다. '에루화'란 이름의 간판을 본 순간, '좋다'라는 후렴구가 절로 떠올랐다. 남의 땅에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에루화'를 잊지 않은 그들이기에 이토록 지난한 삶을 이겨냈구나 싶었다. 동포센터 입구 전면에는 '우토로에서 살아왔고 우토로에서 죽을 것이다'는 붓글씨가 적힌 피켓이 결연하게 서 있었다. 스무 명이 겨우 자리 잡은 생활센터 안 게시판에는 그곳을 찾은 사람들이 적은 격려의 손편지와 그림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김수환 씨는 나직한 어조로 우토로의 문제는 결코 민간문제가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전쟁과 식민지배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에 국가가 빠지면서, 역사적인 시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가 민간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협정(1965년)이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강제노역과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정부에 면죄부를 준 것이란 말도 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한일 관계의 위기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지 않은가.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면 결과도 왜곡된다.

설명을 다 듣고 밖으로 나오자 햇볕이 따스했다. 착잡했다. 이 불모지에 우리 동포들이 세운 마을이 70여 년이란 긴 세월 차별과 설움을 견디며 꿋꿋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각하니 말로 하기 힘든 감회가 솟구쳤다. 아베 정부의 독도 망언과 소녀상 문제로 관계가 껄끄러운 때에 남의 땅에 사는 그들이 새삼 가슴 아팠다.
김 대표의 안내로 마을 한쪽으로 나가니 공사 당시 노동자 합숙소로 쓰인 함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담과 지붕과 마룻바닥이 숭숭 뚫린 채 곧 허물어질 듯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건물은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몇 년 후면 우토로도 모습이 바뀐다. 2016년 7월부터 재개발 공사를 시작하여 4, 5년 후에는 2동의 공동주택과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주택이 완성되면 주민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조건이다. 하지만 집값이 비싸 입주 못 할 주민도 있고, 노쇠하여 자녀들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갈 사람들도 있다. 그때면 우토로의 지난한 역사는 주민들이 세우고 싶어 하는 기념관에서 사람들을 맞을 것이다.

그곳을 나오다가 강경남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간이의자에 앉아 굽은 허리를 펴면서 8세에 아버지를 찾아 고향을 떠난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다. 한국말이 아주 또렷했다. 할머니는 느닷없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노래를 불렀다. '에루화 좋다'고 후렴을 넣고 싶을 만큼 유창한 노래 솜씨였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는 '고향 까마귀'가 떠나는 게 못내 아쉬운 듯 굽은 허리로 보행기를 밀면서, 우토로 마을에 마음 한 자락 보태고 떠나는 문인들을 마을 입구까지 배웅했다. 그 눈길이 살포시 젖어 보였다. 나는 언젠가 맞게 될 할머니의 영면만은 부디 안온하기를 바라며, 지금도 비가 오면 물에 잠긴다는 길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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