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어르신들의 인생역정은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84일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불운과 절망, 운 좋게 큰 청새치를 만나 목숨을 걸고 잡았으나 상어 떼에 죄다 뜯긴 허탈과 상실, 그럼에도 사자꿈을 꾸며 산티아고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평생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일했으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처럼 제대로 된 노후 준비조차 하지 못한 우리 어르신들은 산티아고를 닮았다. 이것까진 그나마 살아온 보람이 있었기에 감내할 수 있지만 무너진 공경사회 풍조에서 살아가는 처량함이 더욱 아프게 와 닿는 게 지금 노인세대다. 그렇더라도 열정은 산티아고처럼 남아 있다.
최근 불거진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가 소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힘없고 고독한 주인공 산티아고에게 남은 작은 위안조차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외, 빈곤, 고독사라는 노인 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큰 숙제다. 이런 상황에서 대수롭지 않은 '지하철 복지'까지 수술대에 올랐으니 씁쓸함이 앞서는 게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16곳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 헌법소원을 올 상반기 중 내기로 한 것은 서랍 속 묵은 숙제를 밖으로 꺼낸 셈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공짜 탑승으로 생긴 재정적자를 정부가 보전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 달라는 주장은 나름 타당성 있다. 무임승차 비율이 16.6%에 이르러 서민의 발인 지하철 노후 시설 재투자에 빨간불이 켜진 데 따른 것이다. 부산이나 서울처럼 20년 넘은 지하철은 더더욱 심각한 지경이니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급속한 노령화와 지하철 운행노선 확장 등으로 무임수송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재정 악화 가속화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헌법소원으로 가기 전에 지방과 중앙이 상생발전 차원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가 복지정책 책임을 지방이 떠맡는다"는 지자체와 도시철도 주장에 대해 정부는 "보전할 법률적 근거가 없고 지방 사무라 중앙정부가 지원하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다. 여론도 엇갈린다. 대도시 노년층만 누릴 수 있는 차별적 혜택이라는 주장에 노인 혜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필요한 제도라는 목소리가 맞선다.
사실 '노인과 지하철' 문제는 이 사안 하나에만 국한해 볼 게 아니다. 기초노령연금 등 법적 노인 연령 만 65세를 기점으로 주어지는 복지혜택이 적잖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20년 15.7%, 2040년 32.3%로 높아지는 추계에 비춰 1981년 노인복지법에 따른 법적 노인 연령이 100세 시대에 합당하냐는 문제와 연결해 풀 수밖에 없는 과제인 것이다. 어르신들에겐 불편하게 들리겠지만 노인 기준을 만 70세로 올리는 논의가 불가피한 단계에 와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법적으로 55세 이상을 지칭해온 '고령자'라는 명칭이 '장년'으로 바뀌는 것도 환갑잔치가 구시대 유물이 된 데 따른 것 아니겠는가.
노인 연령 상향 문제는 2015년 대한노인회가 먼저 공론화를 제기한 적 있다. 급증하는 노인 인구가 조만간 사회 전체에 큰 부담이 되고 나라가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는 707만5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8%를 차지한다. 15세 미만 유소년 인구 비율 13.1%를 추월한 상태다. 노인에게 돌아가는 복지예산이 결국 자식세대에 부담을 키우게 되는 현실을 더 외면할 수 없는 절박함은 어느 가정에서나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부양 부담, 저출산 심화 등과 함께 선순환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지금이 논의의 적기인 것은 노인 인구가 더 늘면 표를 의식한 정치권, 정부가 노인 연령을 올리기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가겠다는 정부 방침도 그런 이유다. 원칙을 밝힌 만큼 여론수렴과 설득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현재 4년마다 1세 더 올려 20년에 걸쳐 70세로 하거나, 2년에 1세씩 올리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우선이나 노인 간에도 견해차가 많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노인 연령을 높이기란 쉽지 않은 문제임은 틀림없다. 선결 과제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70세로 높이려면 당장 정년 연장 문제부터 뜨거운 감자다. 생계 보장 기초소득, 청년 일자리를 뺏지 않는 안정적 노인 일자리, 연금생활 보장 등도 넘어야 할 산이다. 세대 간 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 연령 상향 조정은 양보와 고통 나누기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 나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일본도 노년학회가 노인 기준을 65세에서 75세 이상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한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가정에서부터라도 세대 간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노인과 지하철'이 그 방아쇠가 돼야 한다. 미래는 금방 닥쳐온다.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