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항 입구에 엘리스라는 바위투성이 작은 섬이 있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에 들어오려는 이민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다. 지금은 박물관이 됐지만 엘리스 섬 입국심사국은 대략 1892년부터 1954년 사이 인종 시장을 방불케 했다 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출신은 그나마 순조롭게 이민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외 국적자는 까다로운 심사를 넘지 못하고 되돌아간 경우도 적잖았다고.
신세계를 찾아 뉴욕 항에 들어선 이민자들은 가장 먼저 거대한 조각상 하나를 봤다. 엘리스 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리버티 섬에 세워진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이다. 프랑스가 188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것임은 익히 다 알 터.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고국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부여하는 자유, 인권, 기회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느닷없이 자유의 여신상 오른손이 들고 있는 횃불이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횃불 모양의 새로운 로고를 만들었는데 그게 자유의 여신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해서다. 자기들 말로는 횃불이 진취적 도약과 포용·통합·화합의 의미를 갖고 있다나.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 같은데 그게 과연 먹힐까 싶다. 반성과 인적 쇄신 없는 간판 바꿔 달기는 눈속임일 뿐. 최순실이 최서원으로 개명한 것과 다를 바 없는데 횃불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횃불 로고를 두고 보수끼리 난리다. 북한 김정일이 김일성 생일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평양 주체탑의 횃불과 닮았다 해서다. '박근혜 구하기'에 나선 한 보수단체는 심지어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향해 "차라리 북으로 가라"며 열을 올리고 있다. 희망적 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유한국당이다. 당내 돌아가는 모양새는 더욱 가관. 지지율 0%에 가까운 10여 명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거나 한다는데 헛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무주공산인 지금 이름 하나라도 걸쳐놔야 장차 운신의 폭이 넓다는 각자 계산이 아니고서는 이런 기현상이 나올까 싶다. 망쳐 놓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은 뒷전이다. 이래서 횃불에 영혼이 없어 보이는 게다. '촛불에 대항하려는 횃불' 외 어떤 감흥도 와 닿지 않는다. 지금 횃불의 쓰임새는 딱 하나 있다. 여전히 권력의 미련을 못 버리고 주저앉아 있는 골수 친박을 당에서 몰아내는 데 높이 드는 것이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