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페이크 뉴스(가짜뉴스)'는 전통이 깊다. 만우절이면 언론은 한구석에 가짜뉴스를 숨겨놓고 독자가 찾아내 웃어주길 기대했다. 오래전 영국 BBC는 '스파게티가 나무에서 열린다'는 능청스러운 보도를 했다. 의도를 간파한 시청자가 "스파게티 나무 재배법을 가르쳐달라"고 물었고, BBC는 "잔가지를 토마토소스에 꽂아놓으면 스파게티가 열린다"는 답변으로 재미를 더했다. 몇 년 전엔 진짜 같은 가짜기사에 속은 국내 언론이 이를 인용했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만우절에 자살한 홍콩배우 장국영의 죽음은 한동안 가짜뉴스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제 낭만의 시대는 끝난 듯하다. 서슬 퍼런 비수를 품은 가짜뉴스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조작한 뉴스가 엄청난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불과 열흘 전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반기문 전 유엔총장의 낙마로 그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구촌의 무법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에도 가짜뉴스의 그림자가 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앱이 나오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가짜뉴스가 무서운 점은 급속한 확산이다. SNS를 만나면 한층 무서워진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뉴스는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공유할 수 있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진짜로 둔갑해버린다. 가짜라는 게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반 전 총장의 '퇴주잔 소동'은 악의적으로 짜깁기된 영상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지지율이 떨어진 뒤였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문(文)씨 성을 가진 주요 인물들이 종북했다는 '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여기에는 이름난 문 씨가 대거 등장한다. 문세광, 문익환, 문선명, 문규현, 문성근을 비롯해 '국민여동생' 문근영까지 끌어들였다. 어이없어 보이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게 문제다.
또 하나 가짜뉴스가 무서운 것은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SNS로 유통되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불가능하다.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돼 '페이크북(Fakebook)'이라는 조롱까지 듣고 있는 페이스북(facebook)도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똑 부러지는 해결책은 아직 없다. 트럼프 당선을 도왔다는 비난을 들은 페이스북은 오는 4∼5월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서 가짜뉴스 차단에 나섰다. AFP 르몽드 등 8개의 프랑스 유력 언론사들과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 언론사는 페이스북의 허위뉴스 차단 툴을 통해 이용자들이 올리는 뉴스 기사를 검증하고, 팩트를 체크한다고 알려졌다. 구글도 동참해 17개 프랑스 유력 언론사들의 공동 프로젝트인 '크로스 체크'의 파트너로 참여한다. 물론 팩트 체크에 나선다고 다 걸러질지는 미지수다.
가짜뉴스를 발견하더라도 삭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페이스북에 오른 페이크 뉴스를 삭제하는 데는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은 후 삭제가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위사실이 확인된 가짜뉴스라 하더라도 즉시 차단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페이스북의 페이크 뉴스는 대처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카카오톡 같은 폐쇄 커뮤니티에서 회원들끼리 공유하는 것은 손쓸 방법조차 없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국내 정치 상황에서 가짜뉴스의 폐해는 생각하기도 싫다. 대선주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경쟁 후보가 아니라 가짜뉴스가 될 수도 있다. 상대를 겨냥해 고의로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선거판의 독버섯이다. 지난 대선에서 '십알단'이나 댓글부대가 문제가 되었듯이, 이번 대선에서 특정 세력이 '가짜뉴스부대'를 운용할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는 부랴부랴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를 만들거나 유포하는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가짜뉴스를 최초로 만든 이를 찾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사후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애당초 가짜뉴스를 차단하기란 쉽지가 않아 보인다. 또 가짜뉴스라는 누명을 씌워 권력에 대한 올바른 비판과 의혹 제기를 막거나 처벌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가짜뉴스 방지를 위한 언론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 두 번 세 번 팩트 체크를 통해 정확한 사실만 보도해야 할 것이다. 대선 후보들도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가짜에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후유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 특히 SNS는 성향이 같은 사람끼리 관계를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출처 불명의 가짜뉴스에 당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그걸 가려낼 안목이 부족하다면 검증된 기사만 싣는 신문을 정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짜뉴스를 골라내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라도 들어야 할 세상이 되어버렸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