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투·완봉이 많았던 과거 한국 프로야구 투수 시스템은 참으로 비과학적이었다. 최동원, 윤학길 같은 선수가 9회를 책임지는 '철완'으로 명성을 날리긴 했지만 결국엔 혹사로 투수생명 단축 결과를 가져왔다. 팬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지금은 메이저리그급 투수 운용 체계를 그나마 갖춘 셈이다. 분업화된 야구에서 구원투수 등판 시기는 승부에 매우 중요하다. 선발의 제구력이 떨어지거나 투구 수가 많아 지친 타이밍에 나와 점수 리드를 지키고 마무리에게 넘겨주는 징검다리 역할은 피를 말린다.
던지는 이닝 수에 따라 롱·미들·쇼트 릴리프로 세분되는 구원투수 즉 중간계투는 상황에 따라 운용이 다르다. 게임을 꼭 잡으려는 필승조, 역전의 기회 때 투입되는 추격조, 패색이 짙어 다음 경기에 대비하는 패전처리조로 시스템화된 게 요즘 야구다. 그런데 구원투수는 역할에 비해 선발, 마무리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 투입됐다가 대량 실점이라도 하는 날엔 온갖 욕을 혼자서 다 듣는다.
야구로 치면 감독이 투타 선발진 오더를 짜는 시점쯤 되는 게 지금 대선 국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안희정·이재명으로 당내 경선 선발이 확정됐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손학규에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합류시키려 러브콜 중이다. 딱한 것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스파이크 끈을 푸는 바람에 황망한 지경에 놓인 보수진영. 반기문도 놓치고 유승민·남경필 조차 좀체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바른정당의 고민은 이만저만 아닐 터. 선발진이 이제 워밍업을 시작했는데 김무성 구원투수 등판 요구가 빗발친다 하니 안쓰러울 정도다. 본인은 불출마 번복이 어렵다지만 정치는 생물이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
그제 당명을 새누리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고 '박근혜 탈색'이 될까마는 그쪽 당 돌아가는 모양새는 가관이다. 본때 나는 선발투수조차 없는 와중에 갑자기 다량의 대선후보가 등장하는 기현상은 코미디를 보는듯하다. 이래저래 따지면 최대 10명까지 된다는데 면면을 보면 글쎄다. 이걸 두고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불임정당에서 벗어났다"며 좋아라 한다. 하지만 원포인트 구원투수급들의 인해전술은 우리 정치사에 없던 촌극. 뭐니뭐니해도 내심 지지율 상승을 즐기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구원 등판 여부가 최대 관심사인데 나오려면 이거 하나는 잘 판단해야 할 터. 필승용인지 추격용인지 아니면 패전처리용인지.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