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주'에 세계 질서가 대혼돈에 빠져들었다. 마치 출퇴근 시간에 미 육군 주력 전차인 M1 A2 에이브럼스를 몰고 차선과 속도를 무시하며 마구 휘젓고 다니는 모양새다. 간혹 끼어들기가 있었어도 짜증을 참아가며 교통신호를 따라 큰 흐름을 유지하던 차량 행렬이 무법자 같은 탱크의 난폭운전에 부서지고 깨지고 나뒹군다. 거리엔 충격과 공포가 넘친다.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이익, 일자리, 국경, 군대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취임 2주가 갓 지났지만, 세계는 마치 2년이나 된 듯 피로감을 호소한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미국을 다시 강하게, 부유하게, 자랑스럽게, 안전하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세계 각국은 불안하고 불온하고 불순하다고 아우성이다.
'빅 브러더'가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상황을 그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아마존 판매량이 트럼프 취임 이후 무려 9500% 이상 폭증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자기들 손으로 대통령을 뽑은 미국인들조차도 트럼프 시대가 '디스토피아(반이상향)'로 흐를 것이라는 불안감에 떨고 있나 보다. 하긴 트럼프 취임식에 모인 인파가 오바마 때보다 많았다고 강변하면서 '대안적 사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백악관이다. 이런 모습에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권력'이란 신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이중사고를 주입한 소설 '1984' 속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진리부'를 연상했을 법도 하다.
기나긴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과 품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진해왔다. 잠시 주춤하거나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인권의 신장이란 큰 흐름은 도도하게 이어져 왔다.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마녀사냥, 제노사이드, 제국주의 시대, 세계대전 등 끔찍하고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생채기는 아직도 인류역사에 오명으로 낙인돼 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던지고서 말이다.
그런데 세계 1위 국가 미국의 대통령이 주도하는 반이민, 불관용, 반인권, 반인륜 조치들을 보며 다시금 역사가 거꾸로 회귀하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중동의 극단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종파, 혹은 아프리카의 폭압적 독재국가에서 종종 벌어지던 인종 분리와 장벽 쌓기, 고문 찬양이 문명화된 초강대국에 의해 재현되려는 현실 앞에 전율한다. '수치의 벽'이라 불렸던 베를린 장벽, 이스라엘 폭력의 결정체인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을 비난했던 문명사회는 불법 이민자를 막는다는 핑계로 멕시코국경 3200㎞에 거대한 장벽을 쌓겠다는 트럼프의 무지막지함에 경악한다.
우리말에 '도무지'라는 부사가 있다. 도모지(塗貌紙)에서 유래한 말이다. 도모지는 조선시대 형벌, 그것도 사형(私刑)의 하나다. 물에 적신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발라놓아 숨을 못 쉬게 해 고통을 주는 고문이다. 한지에 물을 계속 뿌려가며 코와 입에 달라붙게 해 결국 숨이 막혀 죽는 일도 허다했다. 온몸이 발가벗겨지고 손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 한 채 입과 코로 물이 들어오고 숨이 컥컥 막혀 곧 죽을 것 같은 심정을 상상해보라. '도무지'는 그래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게 미국에서는 '워터 보딩(물고문)'이란 이름으로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금지하기 전까지다.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부어 숨쉬기 힘들게 하는 고문이다. 우리나라도 독재정권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 등에서 고문기술자들에 의해 은밀하게 저질러졌다. 현대 문명국가치고 고문을 합법화하는 나라는 없다. 그건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기간 국가의 이름으로 물고문을 부활하자고 외쳤다. 현대판 '도모지'를 하겠다는 트럼프를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세계 지도에서 그래도 이름깨나 있는 나라가 벌이는 작금의 행태는 점입가경이다. 트럼프에 앞서 영국은 브렉시트로 유럽통합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즉결처단도 불사하며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는 필리핀의 두테르테, 군사 쿠데타를 제압하고 1인 장기 독재체제 정비를 서두르는 터키 에르도안, 황제를 꿈꾸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노리는 중국 시진핑, 차르 시대를 열어가는 러시아의 푸틴, 군사 재무장을 통해 전쟁하는 나라를 지향하는 일본의 아베까지 전 세계에 마초와 스트롱맨이 판치고 있다. 여기에 피의 숙청과 군사적 모험주의로 동토의 공화국을 만들어가는 북쪽의 김정은, 블랙리스트와 비선 실세 등 국정 농단으로 나라를 망친 박근혜 대통령까지 혼돈과 불안의 시대를 연출한다.
세계 곳곳에 혐오, 적대, 차별, 불신, 좌절, 반감, 고립, 대결, 분노 등이 넘쳐나고 있다. 한편에선 관용과 개방, 다양성과 포용력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우리는 이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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