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忠誠)은 인간의 본성 중 올곧은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겠다는 건 가식일 터. 사실 이렇게 충성을 말하는 건 좀 도식적이다. 온 백성이 임금만 섬기는 왕조시대의 개념이기도 하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충성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 정의하고 있다. 특히 임금이나 국가에 대한 것을 이른다는 단서가 달렸으나 뜻을 제대로 살리면 아래에서 위로만 향하는 게 충성이 아니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일이 없는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요구되는 충성의 개념이 그렇다.
높은 충성도는 공직자의 덕목 중 하나다. 여기서 충성은 사람 우선이 아니라 국가이념과 헌법의 기본질서 수호다. 국민 전체의 보편적 이익에 헌신할 책무도 있는데 아래로의 충성심이 없다면 어려운 일. 국민 모두에게 요구되지만 공직자에게 더 절실한 것은 일차적 책임자이기 때문. 그 최선봉에 대통령이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국난은 이런 충성의 개념이 붕괴된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터. 청와대 공직자는 대통령에게, 대통령은 최순실에 과잉 충성한 결과다.
'최순실 게이트'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충성 맹세'가 등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8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취임할 당시 전국대학생연합회장이던 최 씨가 봉사단 기관지 '새마음'에 글 하나를 기고한다. '우리 함께 뭉치자 일하자 믿자'라는 글에서 그는 박 대통령을 칭송하고 충성 맹세를 한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전여옥 전 국회의원이 직접 목격했다며 방송에서 들려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아부형 충성 맹세도 있다. 2006년 박 대통령이 '커터칼 테러'를 당한 뒤 완쾌되자 "깨끗한 모습으로 상처가 치유된 것을 보고 (하늘의) 특별한 뜻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나.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가 최 씨에게 충성 맹세를 한 사실이 밝혀진 과정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특검에 소환되면서 유 대사는 기자들에게 "최 씨가 저를 추천했다면 굉장히 사람을 잘못 봤다"고 큰소리치더니 웬걸 조사 3시간도 안 돼 시인했다. 지난해 최 씨에게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잘 도와드리겠다"고 충성 다짐까지 하고는 모른다고 잡아뗐으니 혀를 찰 노릇. 하기야 대통령이나 최 씨에게 충성 맹세를 한 사람이 어디 유 대사뿐일까. 그랬던 이들이 줄줄이 등을 돌리니 청와대 내부에서 "왜 장세동 같은 사람이 없냐"며 개탄했다나. 어쩌겠나 그 또한 박 대통령의 업보인데.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