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혈압에 방광 기능도 안 좋아서 약을 매일 한 움큼 먹는 70세 환자가 진료를 보러 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에휴, 내가 어서 빨리 죽어야지 여러 사람이 편하지." 그러면 농담으로 "어머니, 요즘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의학이 발전해서 웬만하면 다 살려놓습니다. 그냥 조금씩 고쳐가면서 즐겁게 지내십시오"라고 말한다.
진료 현장에서 느끼는 고령화는 단순히 '나이 든 이가 많아졌다. 노인이 많아졌다'는 양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50대는 팔팔한 청년 그룹이며, 60대는 더는 노인 취급받던 예전의 60대가 아니다. 70대 정도 되어야 어른으로 대접받고 80대라 하더라도 이제 더는 나이가 많다고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치료에 소극적이지는 않다. 외래 진료를 보기 위해서 보호자 없이 혼자서 오는 90세 후반에서 100세를 넘은 환자들도 낯설지 않다.
60세 이후 재혼하거나 새 인연을 만나서 제2의 성을 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 방광암 치료를 받았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은퇴 후 봉사활동도 하면서 여전히 바쁘게 사는 70대 할아버지(?), 단지 몇 년 더 살더라도 기저귀 없이 살겠다며 요실금 수술을 받으려는 85세 할머니까지. 이제는 더는 뒷방 늙은이가 아닌 건강한 노령 인구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있어서도 그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미국의 윌리암 새들러 박사는 은퇴 이후 30년의 삶을 핫 에이지(Hot age)라고 명명하고 성공적인 뜨거운 삶에 대해 정의했다. 이들은 육체의 부활 (renewal), 원기 회복(revitalization), 영적 재생(regeneration), 자아의 재발견(rediscovery), 회춘(rejuvenation), 인생의 방향 수정(redirection)을 꾀하면서 뜨거운 인생(Hot Age)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은퇴 이후 삶이 빙하기가 아닌 핫 에이지로 사는 이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첫째,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과는 달리 이들은 주로 내면적인 만족을 추구한다. 둘째, 과거에는 가족 친구 자녀 직장 등을 위해 살아왔으나 이제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도 이기적이라는 지탄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셋째, 그들은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다.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 아니라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 여가를 즐기는 일을 하고 있다. 넷째, 정신적인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호기심 웃음 명랑성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다섯째, 가족 친척 이외에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베풀면서 거기에서 행복해지는 사람이 많다. 여섯째, 그들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과 죽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항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결국 우리가 지혜롭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필요한 준비와 지향점을 보여준다.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나 사회적으로도 고령사회에 걸맞은 노인정책, 사회복지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대도시 중 고령화 도시 1등 부산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타이틀은 10년 전에도 똑같았다. 게다가 고령화 대응 능력도 전국 시·도 중에서 꼴찌라고 한다. 2035년에는 50%가 고령자 가구(부산 1인 가구 중)라 하니 이제는 고령화에 적응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령 인구에 대한 정책과 준비가 필요하다. 부산시는 WHO의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했는데, 이 네트워크 역시 활기찬 노년과 정든 곳에서의 나이 들어감을 주요 가치로 삼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누구나 노후에 대한 준비를 잘해서 인생 후반부를 핫하게 보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
최근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에 연임된 강수진 감독은 올해 나이 50에 들어서면서 '발레리나가 아닌 새로운 인생을 배우고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면 된다'고 하였다. 비록 발레리나에서는 은퇴하여도 일을 계속하고 있는 그녀를 단지 '운 좋은 케이스'라고 부러워하거나 치부해서는 안 된다. 꼭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나 이전 일의 연장 선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일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꺼지지 않는 뜨거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