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저자 안네 프랑크, 링컨 대통령의 청혼녀 에이미 스튜어스, 한국 소설가 심훈. 나라는 달라도 이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갑자기 병으로 숨졌는데 원인이 장티푸스 감염이다. 백신이 발전한 지금도 콜레라 등과 함께 법정 1급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니 옛날엔 그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사람만 감염돼도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사람 목숨을 다량으로 앗아간다는 점에서 전쟁에 버금가는 끔찍한 역병이었다.
장티푸스는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생기는 수인성 전염병이라 삶의 질이 개선된 1980년 이후엔 우리나라에서 우려할 만한 발병이 없었다. 대수롭지 않은 병이 됐지만 과거엔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시달렸으면 백성들이 이 병을 빗대 욕설까지 남겼다. "염병하고 있네"다. 염병(染病)은 세균으로 옮겨지는 전염병(傳染病)의 준말인데, 흔히 장티푸스를 이른다.
비록 우리가 욕 잘하는 민족이라지만 적잖은 욕에는 해학과 정감이 곁들여 있다. 욕쟁이 할매국밥집에서 듣는 육두문자에 성을 내는 사람이 없는 이유겠다. 근데 '염병'은 차원이 다르다. 극도로 증오, 혐오스러운 상대를 향해 날리는 욕설 중의 욕설이다. 무서운 병에 비유한 저주이니 듣는 이는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다.
설 명절을 앞두고 욕 이야기를 하자니 좀 고약하긴 하다. 그렇지만 최순실을 수사하는 특검 건물 청소 아주머니의 "염병하네" 3연타 욕이 갑자기 인기 검색어가 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노릇. 조사에 불응하던 최 씨가 특검에 강제소환되면서 "강압수사를 받고 있다" "어린 손자까지 멸망시킨다"는 둥 고래고래 소리치며 퍼포먼스를 해대자 지켜보던 청소 아주머니가 일갈을 퍼부은 것.
뜻이 나빠 함부로 뱉을 욕은 아니지만 최 씨의 언행이 오죽 가관이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달리는 댓글이 '사이다처럼 시원하다'라는 반응 일색이니 청소 아주머니의 '염병하네' 단어 하나에 민심이 응축돼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는 최 씨의 고함과 "(국정 농단은)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궤변 일변도 인터뷰는 같은 맥락이다. 민심은 이미 저 멀리 떠났는데 아직도 무슨 미련과 꿍꿍이가 남아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욕이 '구수한 직설'로 공감받지 않는 때가 와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벗어나는 날이겠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