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괴담 바로잡기'. 최순실 게이트로 각종 의혹이 쏟아지자 반박하겠다며 청와대가 지난해 말 홈페이지에 개설한 코너다. 그중 한 대목을 보자. '대통령 대포폰 사용 발언은 공작정치의 전형'이라는 제목이다. '외부에서 만든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으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전화기 외에 다른 전화기는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반박했다. 당시 장시호 씨가 6대의 대포폰을 사용했으며 그중 하나는 대통령에게 줬고 대통령이 이를 사용했다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한 바로잡기다.
그러면 그렇지. 설마 대통령이 대포폰이라니. '오보와 괴담'을 바로잡겠다며 청와대가 내놓은 여러 해명이 믿기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진실이지 싶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무리 국정을 망가지게 한 범죄 집단이라 해도 대통령마저 잡범 수준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더구나 2014년 서민생활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며 대포폰 대포차 대포통장 등 '3대 대포악'과의 전쟁까지 선포했던 정부가 아닌가.
사실 대통령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순실 게이트는 '대포폰 게이트'라고 할만도 하다. 의혹에 연루된 비선 실세와 대통령 측근 등이 죄다 대포폰을 사용한 데다 그것도 한두대를 가진 게 아니다. 장 씨 6대를 비롯해 최 씨가 10여 대를 썼으며 문고리 3인방과 안종범, 이영선 등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모르긴 해도 이들 대포폰 사용 내역이 제대로 밝혀지기만 해도 국정 농단의 실체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증언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입에서다. 지난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에서 대통령도 이른바 대포폰인 차명폰을 사용했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 등의 도청 우려를 그 이유로 들었다. 또 "예전부터 차명폰을 썼다. 어떻게 보면 관성"이라고도 했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면서 도·감청을 피하려다 보니 몸에 밴 오래된 습성이라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말마따나 도청 논란이 "우리 정치의 좀 아픈 부분"인 건 사실이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역대 정부치고 정치인 등에 대한 도청 의혹이 제기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휴대전화 도청은 없으며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정부의 핵심 실세가 도청을 피하려 대통령도 이른바 대포폰을 사용한다고 시인했으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청와대 측은 명의를 모르는 대포폰이 아니라 굳이 차명폰이라 주장하지만 불법이긴 마찬가지다. 정 전 비서관 또한 불법 여부를 떠나 '관성'에 따라 오래 사용하다 보니 무뎌진 탓에 순순히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을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최순실 게이트로 워낙 충격적인 일이 많이 드러나다 보니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따위야 그냥 묻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말로 국정이 비선 실세에 의해 얼마나 허술하게 농락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예사로 넘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정 전 비서관의 증언은 휴대전화 도·감청이 손쉬운 일임을 자인한 꼴이다. 엄격하게 보안이 유지돼야 하는 대통령의 공식 휴대전화조차 도·감청이 우려된다면 여타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 도·감청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이뿐 아니라 이토록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의 휴대전화로 도대체 국가 안보는 어떻게 지키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게다가 보안이 철저한 대통령의 휴대전화 도·감청이 우려돼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건 대포폰이 공식 휴대전화보다 보안이 더 잘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대다 보니 더 꼬여버린 셈이다. 결국 아무리 둘러대도 대포폰은 최순실 등 비선들과의 비밀스러운 통화를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서 공식 지급한 휴대전화마저 못 믿어 대통령이 비선들과 대포폰 통화를 했을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숨겨야 할 사안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겠다. 말하자면 대포폰은 그들만의 '은밀한 채널'이었다. 북한 등의 도청 등 국가적 보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들만의 보안이었던 것이다.
'오보·괴담 바로잡기'는 아직도 청와대 홈페이지 상단에 눈에 띄게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의 대포폰 사용 해명도 오보와 괴담 바로잡기라는 16개 항목 중 하나다. 하지만 정 전 비서관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대포폰 사용 발언은 공작정치의 전형'이라는 해명은 그대로다. 그래서 청와대의 표현대로 되돌려 주고 싶다. '대통령 대포폰 사용은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전형'이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하긴 앞으로 바뀌어야 할 청와대 홈페이지의 바로잡기가 비단 이뿐일까.
논설위원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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