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묘미 중 하나는 주옥같은 고사성어다. 귀에 익은 삼고초려(三顧草廬·유비가 공명을 얻으려 세 번 찾아감), 간뇌도지(肝腦塗地·조자룡이 간과 뇌장을 쏟아낼 정도로 유비에 감복함), 읍참마속(泣斬馬謖·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침)은 그 일부다. 글 멋을 살리는 데 참고서가 될 정도로 수많은 성어가 등장한다. 버리긴 아깝고 취하자니 모자라는 계륵(鷄肋), 재주가 가장 출중하다는 뜻의 백미(白眉)도 삼국지 속 용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성어가 있으니 바로 '출사표(出師表)'다. 출사(出師)는 출병(出兵)과 같은 뜻이고, 표(表)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말한다. 즉 장수가 군대를 일으켜 전장으로 나아가면서 왕에게 바치는 우국충정의 글이 출사표다. 촉나라 승상 제갈공명은 두 번의 출사표를 올렸다. 위나라와 건곤일척 전쟁을 앞두고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바친 글은 출사표의 대표 격. 진나라 이밀이 무제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 당나라 사상가 한유가 쓴 제십이랑문(祭十二郞文)과 함께 중국 3대 명문으로 꼽힐 정도다.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피를 섞어 쓴 글이었으니 어찌 비장하지 않았겠나.
공명 못지않은 출사표가 우리 역사에도 있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이다. 이름은 상소문이지만 수군을 없애려 한 선조에 목숨을 건 간언으로 출정해 임진왜란을 끝낸 위대한 출사표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울림을 줘야 진정한 출사표라 하겠다.
현대에서 출사표는 '큰 각오를 하고 어떤 일에 맞서 나서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데 많이 듣는 때가 선거철이다. 바야흐로 차기 대선 주자들이 하나둘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그들이 들고나오는 시대정신과 메시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 사회',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동반성장'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2일 '전무후무 5시간 즉문즉답' 형식으로 정권·세대·시대교체를 내걸 예정. 이재명 성남시장은 23일, 남경필 경기지사·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25일 잡혀있다. 문재인 전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도 '택일'만 남겨 놓은 상태. 이래저래 주자가 1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례없는 출사표 경쟁이 벌어질 판.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할 터이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