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황제'로 불린 에스코바르는 1993년 총에 맞아 숨지기 전까지 초호화 생활을 했다. 콜롬비아 자택엔 개인 동물원까지 둘 정도였다 한다. 사망 당시 그는 엄청난 돈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찾지 못했는데 의심가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한때 도피처로 머물던 미국 마이애미 저택이다. 미 정부가 몰수한 이 집을 2014년 구입한 한 요식사업가가 철거 전에 샅샅이 검사를 했다. 뭔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적중했다. 지난해 초 집 바닥에서 비밀금고가 발견된 것. 집주인은 얼른 은행으로 옮겨 보관 중이라고. 집값 1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만한 진귀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관심이 쏠리고 있으니 뜻밖의 횡재도 있을 수 있겠다.

금고의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재화를 보관할 필요성이 생긴 때부터 시작된 것만은 분명할 터.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고는 단단한 나무상자에 철판 띠가 있는 중세 때 것이라고. 금고는 안전이 최우선인데 이집트 키옵스왕의 피라미드는 부장품을 지키기 위한 금고가 대단했다. 사면 길이 226ｍ, 높이 146ｍ에 봉쇄된 입구가 둘 있었으니 역사상 최대 금고로 꼽힐 만하다.

지키려는 자와 훔치려는 자의 싸움이 금고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용도 또한 다양해졌다. 현대식 금고는 귀중한 서류 등 보관용인 방화금고와 돈·귀금속을 넣어 두는 방범금고로 나뉜다. 방화금고는 일찍이 1800년대 미국 여러 회사가 '불에 견디는 금고'라며 대대적으로 판매했으나 기능은 별로였다. 1835년 뉴욕 시 대화재 때 많은 방화금고가 불타 버렸다.

잘사는 집이 철통 금고 하나쯤 갖춘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고관집 절도 사건 당시만 해도 숨긴 장소가 유치했다. 냉장고, 화병, 액자 뒤, 베란다 창고가 비밀금고로 통했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영화 '돈의 맛'은 3평 남짓한 철제금고에 남자 키 높이로 쌓여 있는 돈다발 장면부터 시작한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재벌 수사 때마다 회장님 비밀금고가 드러나곤 했다.

최순실 씨 비밀금고도 게이트가 터지면서 화제가 됐었다. 특검이 지난 7일 최 씨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는데 이미 빼돌리고 없었다 한다. 집에 두 개의 금고와 문서 파쇄기까지 있었다는 게 최 씨 가사도우미의 증언이다. 금고가 있는 곳에는 '금고지기' 또한 있을 법한데 최 씨의 금고지기는 누굴까. 비밀금고는 열리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 최 씨의 금고를 꼭 찾아내야 하는 이유겠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