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이다. 서청원 의원이 친박계 좌장이라면 실세는 최경환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한한 신임과 총애가 그를 친박계 핵심이자 실세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 직전 최경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건 그다운 행동이다. 비밀투표로 이뤄지는 탄핵표결에서 확실하게 탄핵 반대를 보여주는 방법은 아예 투표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탄핵 표결 5시간 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은 1원도 챙긴 적이 없는 지도자"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살아온 지도자"라며 마지막 박비어천가를 불렀던 그였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최경환처럼 친박계 최우선 가치의 중심에는 항상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한다. 박 대통령에게 좋은 일이면 무조건 옳은 일이다. 때론 말도 안 되는 궤변도 불사한다. 의리, 배신, 역린 등의 친박계 용어는 그들이 박근혜 옹위 부대임을 상징한다. 박근혜를 위해서라면 거칠고도 오만했다. 경박하고 막무가내였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밟아버렸다. 유승민 의원 제거가 대표적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 죽여버려. 그런 ××는 솎아내야 한다. 내일 공략해야 돼"라고 한 막말은 친박계 조직논리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한 자락을 보여줬다. 발언자가 누군지 모르고 들으면 딱 조폭 행동대장의 살해명령 같다. 윤상현이 국회에 온 박 대통령을 향해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박 대통령이 돌아보면서 "여기 계셨네요"라며 활짝 웃은 건 차라리 슬펐다.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른다는 커밍아웃도 있었다. 국정을 논의하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아니라 친목 단체나 가족모임을 연상케 한다.
친박계에게 정치적 이념이나 정책은 희박하다. 오로지 박근혜와 친하냐 친하지 않으냐만 존재할 뿐이었다. 특정인의 이름을 내세워 정파를 만들고, 군신(君臣) 관계를 유지하며 박근혜라는 주군을 결사옹위하는 퇴행적이고 전근대적인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새누리당은 그렇게 사당(私黨)이 됐다. 여기에 보수적 이념이나 가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 국가에 대한 책임과 희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보수 정당이 가져야 할 정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보수정당을 먹칠하고 망쳤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러한 친박계 내부 분위기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못 본 척하게 했을 것이다. 가족끼리 뭐 어때 또는 우리끼리 하는 일인데 문제 있을 게 있나 하는 생각이 친박계 내부에 지배했다. 누군가 설령 저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더라도 감히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박 대통령이 "천벌을 받을 소리"라고 하면서 레이저 광선을 쏘는 순간 킬러가 나서 제거하려 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아도 모른 척 눈을 돌리며 방조하고 묵인했다.
친박계가 '폐족(廢族)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직후 안희정 충남지사가 '우리 친노(親盧)는 폐족'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세간에 회자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정권을 잃은 데 대한 반성이었다.
폐족은 조상이 죄를 지어 그 후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집안을 일컫는다. 다산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폐족이다'란 말을 끝없이 반복했다. "이제 너희는 망한 가문의 자손이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 한 가지밖에는 없다." 더는 벼슬은 못하지만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된다는 아버지로서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인성과 지식을 닦으라는 말이겠다.
친박계가 '폐족의 길'을 갈까. 국민 앞에 사죄하고 새누리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한 뒤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까.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 정당이 건설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벌써 김무성과 유승민을 '인간 이하' '배신자' '수괴'로 규정하고 저격에 나선 것은 친박계 특유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물론 비박계라고 국정 농단 사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오십보백보다. 하지만 친박계의 책임이 더 무겁다.
친박계는 국회 탄핵과 촛불 민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국정 농단 혐의 자체를 부인한다. 잘못을 모른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같다. 게다가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당내에서 버티면서 비박계를 쫓아낸 뒤 주군 박근혜를 다시 옹립하고 지역적 기반을 무대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게 그들의 꿈이다. 보수로 포장하고서 말이다. 보수에 대한 모독이고 모욕이다. 지난 대선때 박 대통령을 찍었던 보수적 유권자 90%가 등을 돌린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청맹과니가 따로 없다. 순혈주의를 표방한 친박당 재건이 그들의 희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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