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자격에 대해 기자들이 물었다. 처칠은 내일, 내달, 내년에 무엇이 일어날지 예언하는 능력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후일에 예언이 맞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당 창시자에 대한 논란이 일자 처칠은 콜럼버스라고 말했다. 출발할 때 어디로 가는지 몰랐고, 도착해서는 더욱 어딘지 몰랐다고 설명했다.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게 정치인이란 이야기다.

어찌 보면 판박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모습 말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재벌과의 돈 거래는 시정잡배의 협잡에 다름 아니다. 굳이 제3자 뇌물 혐의를 들이댈 필요조차 없다. 헬스 트레이너에 호스트바 출신까지 국정 농단의 질적 수준도 최악이다. 비아그라며 태반주사에 프로포폴 이야기까지. 그게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해명은 비웃음만 살뿐이다. 최고 권력의 심장부가 땅바닥 수준이다.

그래 놓고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단다. 국가를 위한 사업이며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나라의 품격을 곤두박질치게 한 것만으로 큰 죄다. 법치를 외치면서 헌법적 가치마저 걸레로 만들었다. 국가 문서를 유출해 잡배들이 국정을 주무르게 만든 게 작은 죄인가. 개혁을 입에 담으면서 뒷구멍으로 재벌 특혜와 헌금을 엿 바꿔 먹어서야 쓰겠는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것만으로도 탄핵의 사유에 해당된다.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대박이란 하찮은 논리로 범벅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개성공단 폐쇄는 또 무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안보위기를 부추겨 정권의 이익이나 챙겼으니 이거야 원…. 공기업 개혁이라 해 놓고 낙하산으로 부실을 조장하다니. 창조경제라 써 놓고 문화와 스포츠를 분탕질하고, 비정상의 정상화라더니 부자 감세에 담뱃세, 소줏세 인상까지. 사드, 위안부, 국정교과서 어느 것 하나 반듯한 게 없다.

내일도 알지 못하면서 내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 그 얕음이 혀를 차게 한다. 당장 한 발 내딛지도 못하면서 내년을 입에 담아서야…. 친박이니, 비박이니, 폐족이니 용어 자체가 저열하다. 원로란 사람들이 운을 띄우고, 대통령이 수수께끼를 얹더니 친박계는 뜬장단이다. 비박계란 사람들은 또 뭔가. 한다. 하긴 하는데 조건 맞으면 안 한다. 아니, 다시 한다. 이게 무언가.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서 대통령은 탄핵됐다. 10월 20일 이후 한 달 보름여간 대통령은 업무를 폐했다. 경질 예정인 경제부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꼴이라니…. 법적인 탄핵만 남았을 뿐이지 스스로 자기 유폐한 지 오래다. 이미 끝이 보이는데 아니라고 우겨봐야 될 일인가. 7000여 명에 달하는 인사권을 활용해 인의 장벽을 쌓겠다? 국회 탄핵이 되더라도 헌법재판소를 통해 배수의 진을 치겠다? 법적 다툼으로, 지리한 논쟁으로 끌고 가겠다?

기어코 국민과 대결하겠다면 이대로 죽 가보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인할 때까지. 청와대의 민낯이 드러날 때까지 지치지 말고 가보자. 국회의 탄핵 가결은 권력의 냉동 상태를 의미한다. 손발이 묶이면 특검의 효력이 제대로 난다. 대통령의 역할, 어둠 속에 숨어 권력을 휘두르던 자들의 행태가 밝혀질 것이다. 서별관 회의서 무얼 했는지, 대우중공업은 살리고 한진해운은 죽인 이유가 무언지. 김영한 비망록이 무언지, 세월호 7시간이나 통진당 해산과 관련한 청와대의 역할이 도대체 어떤 건지. 이것만 해도 핵폭탄이다.

그래, 이 길 따라 끝까지 계속 가보자. 이왕이면 해학과 풍자, 골계를 섞어 잘 어우러진 굿판을 통해 쌓인 한과 울분을 실어 보내자. 이왕이면 만민공동회도 열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점검함도 괜찮다. 삼권 분립이 뭔지, 주권 재민이 뭔지.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당, 야당, 검경, 헌재, 언론, 재벌…. 사람과 역할에 대해 낱낱이 해부하자. 탄핵 가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그 뒤 6개월이 대한민국의 분수령이다.

더 이상 죄 없는 머리털을 쥐어뜯지 말자. 아예 이 굿판에다 모두 쏟아버리면 정화라도 될 것이다. 애써 모은 꿀을 어떤 자들이 먹어 치웠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이 꿀을 챙기는 자가 누군지. 꿀을 다 먹어치우기 전에 그걸 밝혀야 의미가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이며, 얼치기 정치와 온갖 갈등의 덫을 어떻게 걷어낼지 그걸 고민해야 한다.

배가 엎어져야 헤엄치는 걸 배운다고 했다. 바람이 거세야 굳센 풀의 힘을 안다고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다면 새로운 길이 나올 때까지 거침없이 가보자. 한 번도 이루지 못한 퇴행적 역사의 청산을 이번엔 성취하자. 그래야 살 만한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적어도 부끄러운 역사, 헌법적 가치를 거스르는 저질 권력은 털고 가자.

논설고문 aiw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