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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시민 모두가 예술가라면

시민 각자가 일상의 창작을 통해 예술가로 거듭나면

정부의 독선도, 예술계 카르텔의 전횡도 무력해진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2-01 19:59:2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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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은 끝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좀 지나치다 싶었다. 명칭 또한 너무 컸다. '문화'란 말의 범위가 넓기도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10년은 지속해서 매달려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창조융합' 사업을 대통령 임기 말에 벌인다는 것이 무리한 계획으로 보였다. 지난달 18일 정부가 이 사업에 책정한 예산 가운데 878억 원이 결국 국회 의견대로 삭감됐다.
지난해 2월 출범한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차은택 CF감독이 초대 본부장을 맡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가 진두지휘했다. 내용은 서울 지역의 6개 거점 사업으로 돼 있다. 이들이 하나의 '선순환 생태계'를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과 복합콘텐츠 펀드가 절반씩으로 책정된 예산이 올해 3000억 원이 넘는 규모로 커지며, 상대적으로 예산 규모가 작은 문화 분야에서 화제가 됐다. 그러다 급기야 '최순실-차은택 예산'이란 딱지가 붙은 채 대폭 삭감된 것이다.

세부 내용은 모르지만 사업 계획과 참여자들의 면면만 보면 괜찮은 부분도 더러 있다. 핵심은 젊은 창작자와 창업에 대한 투자다. 전체 얼개는 문화콘텐츠 기획-제작-인재육성-구현·소비를 한 묶음으로 관리·지원하는 구조다. 잘만 했으면 산업도 발전시키고, 일자리도 만들 뻔했다. 콘텐츠 제작을 맡은 '벤처단지'에는 출범 당시 13 대 1 의 경쟁을 뚫고 평균 36세의 창작자가 모였다.

또 인재 육성을 맡은 '문화창조아카데미'는 이인식 박사가 문화체험기술 총감독을 맡았다. 이 박사는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지식 융합의 비전을 제창한 과학 저술가다. 여기에 박칼린 뮤지컬 감독,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을 비롯한 '능력자'들로 교수진을 짰으니 지원자가 몰려들 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이 일순간 무너졌다.

예산 삭감을 시작으로 사업 자체가 없어질 모양새다. 사업에 참여한 이들도 차은택 감독과 면식이 있을 뿐 친분은 없다는 식의 '해명'에 바쁜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청운의 꿈을 안고 벤처단지와 아카데미에 모인 청년들의 신세는 또 어떤가. 사업의 취지만큼이나 사업의 준비 과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 과정도 중요하다

만약 정부가 대기업에 억지로 지원을 요구했다면 정부가 잘못했다. 그런 폐단은 근절돼야 한다. 역대 정부의 관행이었다고는 하나 정·경 유착의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사라져야 한다. 국회가 '청탁금지법'에 이어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 정치권의 기금 모금 자체를 금지하는 법을 마련하면 좋겠다. 그래야 다음 정부부터는 그런 일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 사업의 추진 과정이 투명했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비록 문화창조융합벨트에 속한 사업이라도 문화계의 미래 동력이 된다면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보는 이도 있다. 다만 '지역'의 관점에서 이 사업이 무산되는 것은 솔직히 다행스럽다. 서울과 지역의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치 커질 뻔했으니까.

한편 사업 운영 방식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특히 문체부 산하 본부가 진두지휘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2012년 국제신문 칼럼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비해 국립국악원이 런던올림픽 응원가로 만든 '코리아' 뮤직비디오는 빛을 못 본다고 말했다. 또 '코리아'가 한국 문화의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뜻이 지나친 탓에 예술성과 재미가 죽었다고 말했다.

'코리아'의 연출을 차은택 감독이 맡았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혹시 차 감독이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계속 맡았다면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았을까. 분명 국가 주도의 문화 정책도 있어야 하고, 민간 주도의 문화 활동도 있어야 한다. 다만 각자의 영역을 뚜렷이 하고, 둘을 뒤섞지 않는 게 중요하다.

국가 주도의 문화 정책에서 핵심은 공교육에 예술 교육을 강화하고,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을 잘 조성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 마디로 시민 역량 강화다. 필자는 화가 라파엘로의 소품 몇 점을 보여주고 비싼 입장료를 받는 전시회에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입장권을 사려고 장사진을 이루며 전시장 외곽을 두 바퀴나 도는 모습을 봤다. 하짓날 파리 시민 각자가 악기를 들고나와 음악축제를 여는 것도 봤다.

시민 수준이 이 정도면 시민 스스로가 문화를 융성시키고, 시민 각자가 예술가를 지원한다. 반면 정부가 이번처럼 조급하게 정부 산하 본부를 만들어 직접 사업을 꾸리면 재미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먹튀'(먹고 튀기) 선수도 꾀는 법이다. 물론 국익 차원에서 K팝 K컬처 같은 문화산업을 미는 건 좋다. 단지 투명해야 한다.

예술계 일부가 '카르텔'로 엮였다는 것은 사실이고, 예술계도 반성할 점이 있다. 그렇다고 사업 주체와 수장의 선정에 정부 의지가 너무 작용하면 이처럼 사달이 난다. 이러나저러나 국가 주도의 문화 정책 실현에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 문제 또한 시민 역량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시민의 눈이 높아지면 예술계의 '진영' '마피아' 관행이 먹혀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길게 보면 이것이 정답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정부도, 시민도 함께 애써야 할 것 같다.

■ 시민 역량 강화가 답이다

지난 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본 영화 '패터슨'은 인상적이었다. 패터슨은 뉴저지 패터슨 시의 버스 운전기사다. 매일 똑같은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반면 그는 수시로 공책을 꺼내 시를 쓴다. 하루하루가 다른 날이 되는 이유다. 일상의 창작으로 날마다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까. 또 시민 각자가 나날이 예술가로 거듭나면 정부의 독선도, 예술계 카르텔의 전횡도 무력해지지 않을까.

'최순실-차은택 예산'에 관한 소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국제신문'의 '이 한 편의 시조'와 '경북일보'의 '아침시단'을 펼치며 위안을 얻는다. 우리의 나날을 밝혀주는 것은 이렇게 묵묵히 예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앞날 또한 일상을 바꾸는, 일상의 시학(詩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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