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늘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여자가 비뇨기과를 선택했느냐?'
전국에서 네 번째,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비뇨기과를 수련하는 여의사라서 의도치 않게 많은 이의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비뇨기과라는 과에 대해 성기능이나 남성 환자만 있다고 오해하다 보니 주변에서 궁금한 눈으로 바라본 듯한데, 사실은 여자 환자도 많고 배뇨장애 질환을 주로 다루기에 나 자신도 의사라고 생각하지 여의사라서 특별하다 생각은 않는다. 부담스러운 관심은 때로는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채찍이 되기도 한다. 혹여 나로 인해 '여자라서 잘 못 하네, 역시 비뇨기과는 여자가 하는 분야가 아니야'라는 인식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의사로서의 실력'이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환자들도 여의사라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환자에게 귀 기울여 주는 의사를 찾기 마련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첫 여성대통령이기에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머릿속이 복잡하되 '아, 향후 우리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은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박 대통령의 엄청난 실정으로 인해 '여성지도자=실패'라는 잘못된 낙인이 남녀를 불문하고 뇌리에 박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여기저기서 '봐라,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딱 그 꼴이네'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심지어 이 속담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대통령 이미지가 뜨는 판국이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오히려 여권 신장의 걸림돌이 되었다고 논평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여성은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는 편견을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보도였다. 안 그래도 한국은 양성평등 순위가 115위(2015년 기준, 145개 국가 중)로 낮은 국가 중 하나인데 여성 대통령으로 인해 양성평등이 더 후퇴할 빌미를 준 것에 대해 참으로 한숨밖에는 안 나온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의 어원은 중국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기 위한 명분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은나라 주왕이 요부 달기의 말만 듣고 정치를 하고 있다며 '옛말에 이르기를 암탉이 새벽에 울면 안 된다고 하였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반정을 주도하였다.
그런데,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초기에 문제의 본질과 무관하게 대통령이나 최순실의 성별과 관련된 공격성 발언을 종종 접할 수 있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대표적인 속담 외에도 '저잣거리 아녀자' '망측한 일을 벌인 여자 대통령의 행각이 병신년(丙申年)에 발각됐다' '성괴' '100년 내로는 여성 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
여기에다 박 대통령 측이 '대통령'이란 공식 직책보단 여성임을 내세워 보호받으려 시도하며 불난 곳에 기름을 들이붓는 형국이다.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닌 여왕으로서 군림하면서 이제 와서 여성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여성단체의 논평처럼 여성은 약하고 특별하게 보호받아야 하거나 배려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성차별적이고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집회를 거듭하면서 주최 측과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자정노력과 유모차부대, 여성, 청소년, 가족, 장애인 등 전 세대 계층이 참여하면서 성차별적인 발언을 행동을 자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주 광화문 집회에서 가수 DJ DOC의 공연이 '수취인분명'이라는 노래 가사의 여성혐오 공방으로 취소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위 주최 측은 여성 ·장애인·성 소수자 등을 비하하지 않기, 특정 인물의 외모를 언급하지 않기, 질병이나 장애를 비유하지 않기 등 집회 전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미리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런 새 질서와 평화시위는 자발적인 시민문화로 인해 생겨난 것이기에 비록 나라는 혼란스러우나 대다수 국민의 의식과 지성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
이 암울한 시대에 암탉이냐 수탉이냐 하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뭉쳐야 할 때며, 암탉이라 잘못한다는 것이 아닌 자체의 능력과 잘잘못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