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의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대면조사를 끝내 거부했다. 검찰이 29일까지 최종 시한을 정하고 압박을 가했으나 일주일 넘게 침묵하다가 하루 전날인 어제 유영하 변호인을 통해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위중한 피의 사실이 계속 보태지는 상황에서 조사 회피는 법을 앞장서 지켜야 할 대통령이 적법한 사법절차를 무시한 행위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던 대국민 담화는 순간 위기를 모면하려는 눈속임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 변호인이 "대통령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 수습 방안을 마련하고 특검을 임명해야 하는 등 일정상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조사 거부 이유는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세월만 보내는 식물 대통령이 그것도 탄핵을 앞둔 마당에 무슨 시국 대책을 찾는다는 건지 어안이 벙벙하다. 대통령이 직접 진실을 말하고 속죄하는 게 수습 방안의 최우선 아닌가.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변호인이 몇 줄의 문자메시지로 입장을 밝힌 건 국민을 아예 우습게 보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오만불손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최순실 씨 등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하면서 대면조사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변호인을 앞세워 검찰 수사가 "사상누각이다" "소설을 썼다"며 되받아쳤다. 그랬으면 그 근거와 이유를 떳떳이 밝히는 게 마땅하나 시간만 질질 끌다 아예 못 받겠다고 나오니 저의가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과 청와대 기밀문서 유출의 사실상 주범에 이어 차은택 씨의 공소장에도 공범으로 적시된 마당이다. 차 씨 회사가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되도록 하는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여했다. 최순실의 수족에 불과한 차 씨의 뒤치다꺼리까지 한 대통령이다. 제3자 뇌물죄 혐의까지 받는 사실에 눈감고 뒤에 숨어 시간을 벌고 탄핵·특검·국조·개헌 정국의 혼란한 틈에서 돌파구를 찾을 심산이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국가 원로들 권유대로 조기 퇴진하든 계속 버티든 종국의 형사처벌을 피하진 못한다. 이렇게 된 이상 특검의 책무가 더욱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