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는 말 만큼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없는 것 같다. 국민의 분노와 비통, 부끄러움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 아침밥을 먹다가도 짜증이 나고 화가 울컥 난다는 시민이 많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세계 11위 경제 대국 대한민국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멀쩡한 국민들까지 싸잡아 삼류 취급받고 있다는 데 분통이 터진다. 대통령이 잘못했는데 "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냐"는 중학생들의 팻말 앞에 할 말을 잃는다.
지난 주말의 100만 개 촛불은 민심이 임계치를 넘어섰음을 보여주었다. 절제되고 질서 있는 시민들의 촛불 행진은 천만금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촛불이 오히려 과거 시위 때 난무하던 죽창과 쇠파이프, 화염병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무기였는지를 깨닫게 한다. 분노를 축제로 승화한 시민들의 시위는 그 어떤 폭력과 억압, 불의한 제도까지도 무너뜨릴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을 것임을 증명했다.
열린 광장과 거리에서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갈 길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유모차에 젖먹이를 태우고 온 30대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이런 나라를 아이에게는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순결한 가슴을 가진 중·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움직이는 대통령과 권력층의 불법과 불의, 헌법파괴에 분노했다. 대학생들은 각자의 실력보다는 부모의 능력과 권력에 의해 대학에 가고 성공하는 반칙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소망으로, 청장년들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사태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기로 모였다. 60대 어르신들은 "내가 이러려고 박근혜 찍었나?"는 자괴감과 회한에 촛불을 들었다.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이미 알아버린 시민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4·19때 부정선거로 장기집권하려는 대통령을 추방하고, 5·18로 군부의 권력 찬탈에 항거했으며, 6·29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시민혁명을 이룬 국민이다. 이제 헌법에 따라 선출한 대통령일지라도 헌법 정신을 훼손한다면 용납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권력을 최순실이라는 사적 인연을 가진 사람에게 넘겨주고, 국정을 논의하고 지시를 받았다는 걸 아는 순간 국민의 이름으로 이를 회수하겠다는 각오다.
국민은 5년 한시적인 권력을 부여하고 위임했는데도 대통령이 마치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은 것처럼 자기 멋대로 행사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 공권력을 악용해 겁박하는 안하무인 행태는 못 봐주겠다는 거다. 또 공익과 정의, 인권을 바로 세우고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겠다고 선서한 검사와 검찰이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면서 강한 자 앞에서는 엎드리고, 약한 자에게 이빨을 드러내 무지막지하게 물어뜯는 꼴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거다. 또 우리의 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공무원들이 국민의 종이 돼야 함에도 상전 노릇을 하려들고, 권력에는 영혼까지 팔아가며 아부하는 파렴치함도 척결해야 한다는 거다. 재벌이 대통령의 청부업자 노릇을 한 청와대 수석과 최순실의 측근들에게 돈을 내주면서 총수의 경영권 승계와 사면,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세무조사 편의와 맞바꾸기를 하는 정경유착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 퇴진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전제조건에 불과하다고 국민은 보는 것 같다. 사실 시간문제로 보인다. 국민은 벌써 박근혜 퇴진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제도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헌법적 가치와 국민의 권리가 무시당하고 홀대받는 상황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의 정신에 따라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 그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불평등과 부조리, 반칙과 협잡이 횡행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부정과 불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마치 성공한 사람들의 특권이나 자랑이 되는 사회는 우리 자식 세대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검사를 비롯한 대한민국 공무원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또한 그 원칙은 앞으로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다.
이 모든 국민의 바람은 헌법에 오롯이 들어있다. 다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헌법 제1조는 핵심이다. 제안한다. 앞으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부처와 전국 시·도청사 사무실에 국정목표나 시정목표, 도정목표 따위를 액자로 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을 내거는 건 어떨까.
촛불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이 목 터지게 외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다.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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