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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진령군의 세상

민비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나라를 쥐고흔든 무당이 있었다

최고 권력자가 합리와 논리를 걷어차버린 세상이 온전할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1-10 19:49:5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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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알려지고 난 뒤 '진령군(眞靈君)'이란 무당을 언급하는 글을 종종 접했다. 다만 진령군이 어떤 인간인지 소상히 아는 사람이 의외로 드문 것 같기에 황현의 '매천야록'을 자료로 삼아 여기서 한 번 다루어본다.
1882년 임오군란의 배경은 복잡하지만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민씨 척족세력의 부패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민씨 척족이 권력을 잡은 것은 당연히 고종의 처인 민비 때문이다. 민비의 집안은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 집안(여흥 민씨)이다. 여흥 민씨는 숙종 영조 연간 정국을 주름잡았던 대단한 가문이었으나 19세기 후반이면 형편없이 몰락해 있었다. 대원군이 며느리로 민비를 고른 것도 그녀의 친정이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종의 친정 이후 민비의 형제와 친척들이 차례로 권세를 잡았다. 조선 후기 권세가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부정부패로 재산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임오군란 때 민비는 충주로 달아난다. 이때 뒷날 진령군으로 불린 무당이 접근했다. 민비가 환궁할 날짜를 이 무당이 알려주었는데 우연히 그 날짜가 맞았다. 평소 같으면 무당이 왕비를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민비는 달아나 목숨만 겨우 붙어 있는 형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무당이 나타나 곰살맞게 무사히 언제 환궁할 것이라 말해 주었으니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인가.

민비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던 무당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무당을 옆에 두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신통하게도 민비가 몸이 아플 때 무당이 아픈 곳을 만지면 아픔이 사라졌다. 민비는 무당의 말이면 모두 들어주었다. 무당은 자신이 관성제군(關聖帝君) 곧 관운장의 딸이라고 하면서 신당을 세워 받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비는 무당을 말을 따라 동소문 안에 북관제묘(北關帝廟)를 지어 거처하도록 해 주고 굿이나 재를 주관하도록 해 주었다. 민비는 무당을 잠시라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언니'라고 부르거나 혹은 '진령군(鎭靈君)' '북묘부인(北廟夫人)'이라고 불렀다.

진령군이 민비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고종 역시 북관제묘가 완성되었을 때 참배를 하였으니 진령군의 위세는 더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익을 노리는, 벼슬을 하고 싶은 인간들이 진령군에게 몰려들었다. 고위관료들은 진령군을 찾아가 아첨을 떨며 진령군을 누이라고 불렀고, 심지어 아들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진령군에게는 김창렬이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원래 무당은 천민이라 양반들은 무당의 아들은 사람 축에 끼워주지 않는 법이지만, 진령군이 워낙 권세 있는 무당이었기에 김창렬은 높은 벼슬아치들과 나란히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진령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녀는 단순한 무당이 아니었다. 누구를 벼슬을 시키고 싶으면 그녀는 민비에게 말했다. 백성을 쥐어짜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노른자위 자리인 관찰사와 병사, 수사, 지방 수령 자리가 그녀의 손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조판서와 병조판서가 왕의 명을 받들어 할 수 있는 일을 진령군이 맡아 했던 것이다.

이유인이란 자가 있었다. 이 자가 진령군에게 접근해 자신이 귀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달들을 귀신으로 변장시켜 북악산 아래 숨겨놓았다가 밤에 진령군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불러내었다. 이유인의 부름에 따라 귀신들이 차례로 나타나자 진령군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이유인에게 정말 귀신을 불러내는 능력이 있는 줄 믿었다. 진령군은 민비와 고종에게 이유인의 능력을 말했고 감탄(?)한 민비와 고종은 이유인에게 벼슬을 주었다. 1년 만에 이유인은 알짜배기 지방관인 양주목사에 올랐고 이어 함경남도 병사, 법부대신, 경무사, 경상북도 관찰사 등의 고위직을 지냈다. 이유인은 진령군과 모자 관계를 맺었는데, 사실은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왕비가 무당을 혹신하고 왕은 또 그 왕비를 따랐다. 무당이 왕과 왕비에게 어떤 사람에게 벼슬을 주라고 하면 냉큼 낙점했다. 왕과 왕비 주변에 진령군이 있어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것을 모두 알았다. 하지만 모두 입을 닫고 침묵했다. 진령군을 내쫓으라는 상소가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예외였을 뿐, 모두 진령군을 떠받들어 한 자리 차지하기에 바빴다. 무당 진령군에게 관직을 팔아먹게 하고, 진령군을 비판하는 사람을 죽이려 한 왕과 왕비가 다스리는 세상이 과연 온전한 세상이었을까? 조선은 유교국가다. 정치는 유교의 합리성에 기반을 둔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과 왕비가 무당에 의지한다는 것은 이미 그 합리성을 걷어차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망하는 것은 필연적인 코스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한국사회도 진령군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 합리성이란 것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 아닌가.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래 우리가 경험했던 굵직한 사건들, 예컨대 4대강 사업,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를 떠올려 보자. 이 나라를 지배하는 세력들은 아무리 객관적 증거를 들이대고 논리적으로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사망한 것이 너무나도 명백함에도 병사라 우기고 부검을 해야 한다고 덤빈다. 집권세력의 정치적 언사와 행동을 보면 과연 저 사람들의 뇌에 합리성이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보통의 평범한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은 합리적인 설득이 통하는 세상이다. 진령군의 세상을 물리치자. 이제 합리적 세상을 만들어보자.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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