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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칼럼] 혹세무민

대통령 원칙·소신 어디가고 '강남 아줌마' 하수인 노릇

'최 게이트' 무책임한 뜬소문 대신 정보 선별해 들어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1-03 19:40:2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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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돌아왔다. 온 나라를 뒤흔든 그녀가 검찰의 칼끝과 마주 앉았다. 바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 이야기다. 만약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참 어이없는 현실이다. 너무 허탈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특징은 무속적 표현과 요승의 이야기가 많이 나돈다는 것이다.
실제 최 씨는 서울 강남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고 하니 종교적인 면에서는 '평범한' 종교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얘기가 떠도는 것은 아마도 '특이한' 종교인인 아버지 최태민 씨의 권력 지향적인 행적을 계승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기이한 힘이 배경에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는 항간의 생각도 작용하는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일이 비현실적이고 황당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일단 최순실 씨가 대통령을 이용해 미르· K스포츠 재단을 만들고, 문화·체육 분야를 쥐락펴락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인 모양이다. 물론 대통령도 친근한 사적 인맥을 유지할 수 있다. 정치·경제 지도자는 대부분 공식 조직을 넘어 비선 조직을 꾸린다. 그러나 비선이 이처럼 비공식 자문 집단으로 그치지 않고 실세로서 이익과 직위를 독점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참 나쁜 비선

더욱이 시민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하필 최순실 같은 사람이냐'는 것이다. 사람 됨됨이에 관한 말이다. 최 씨 모녀의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측근들도 최 씨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호스트바(여성 전용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사람, 제약회사를 협박해 돈을 뜯으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자가 비선 핵심이란다. 도덕성도, 전문성도 모자란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날뛴 것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니 오히려 대통령을 믿고 존경하던 사람일수록 더 큰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재 일선 공무원들은 영화 '초청 티켓' 한 장에도 긴장한다. '청탁금지법' 때문이다. 이미 공연 티켓은 공무원의 '원활한 직무 진행'에 관련되므로 '예외 규정'에 속하고, 5만 원 이하의 티켓 제공은 적법하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그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일선 공무원들이 이렇게 법을 지키려 애쓰는 반면, 국가 최상위 조직이 법을 어기며 제 마음대로 꾸려졌다면,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일하는 대중들이 허탈감을 느낀다. 대통령이 강조하던 '원칙과 소신'은 어디로 갔나. 청와대 참모진도, 문화체육관광부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실망스럽다. '강남 아줌마' 하나를 막아내지 못하고, 하수인 노릇을 한 셈이 됐다. 정말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뜬소문'의 범람이다. 온종일 쏟아지는 뜬소문을 듣고 있자면 정말 한국이 '피로사회'란 것을 실감한다. 지난달 29일 어떤 매체는 단독으로 "최순실 아들 청와대 근무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바로 다음 날 한 신문사는 "'최순실 아들 의혹' 김모 씨, 청와대서 종말론 설파"란 기사를 실었다.

반면 최 씨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달 31일 검찰은 최 씨에게 아들이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 씨가 이혼 전 아들을 낳았는지 제적등본을 확인해봤는데 슬하에 정유라 씨 외에는 자녀가 없었다"고 밝힌 것이다. 혼란스럽다. 없는 아들이 청와대에서 일하고, 종말론까지 퍼뜨렸다? 언제까지 우리는 '아니면 말고' 식의 뜬소문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이런 사례는 최근 끝이 없다.

■'아니면 말고'

지난달 31일 한 신문사는 최순실 씨의 언니인 최순득 씨를 또 다른 비선 실세로 지목하며 "순득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성심여고 동기동창"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같은 날 저녁 다른 매체는 성심여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순득 씨가 박 대통령과 성심여고 동문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어느 쪽이 맞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이런 소식의 정보로서 가치를 묻고 싶다.

최 씨가 검찰에 출석한 날 저녁, 몇몇 종편 방송에 뜬 '속보'다. "최순실, 저녁에 곰탕 먹어." 허무 개그인가. 뭣이 중헌디. '최 씨가 호스트바에 가면 5명의 남자가 모셨다' '검찰에 출두할 때 프라다 구두를 신었다', 이렇게 걸러지지 않은 소문이나 가치 없는 정보가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을 아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우리 사회는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이 와중에 뜬소문은 아무 근거도 없이 진실로 포장되어 생산, 유포될 수 있다. 때로는 계획된 '공작'을 거칠 수도 있다. 이때 '카더라 통신'은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임)하는 무당의 말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믿고 싶은 말만 믿으려 한다는 점에서, 또 '아니면 말고'라는 성격에서 말이다.

합리적인 의혹 제기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의혹 제기가 무고(誣告)와 결합하면 혹세무민이 되고, 재난이 된다. 더구나 최근의 사태가 너무 황당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카더라 통신'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최순실 게이트는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보통 때라면 웃고 넘길 괴담에도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다.

여기에 일부 언론사와 정치인의 무책임한 자세도 한몫을 한다. 가뜩이나 분노하고 슬퍼하는 국민에게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일반인보다 훨씬 목청이 큰 사람들이 이처럼 '사실 확인'도 없이 의혹을 막 던지면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 혹세무민이 정부의 전유물은 아니란 말이다.

현대 국가에서 사람의 죄는 법원이 가리는 것이다. 뜬소문 따위로 재단할 것이 아니다. 또 조사 결과에 따라 죄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벌을 받아야 하며, 대통령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이 사실 확인에 착수한 시점이다. 시민들도 검찰의 독립적 수사를 뜨겁게 독려하는 한편, 차분하게 정보를 선별할 때다. 책임자 처벌은 진실 규명 뒤에 요구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철학박사·필로아트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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