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이 출연해서 하나의 주제로 북한의 실상을 얘기하는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날의 주제는 어머니였다. 출연자들이 한 사람씩 북한에서 살 때 어머니와 얽힌 기억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남쪽이나 북쪽이나 '어머니'라는 존재는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내 어머니가 어릴 적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악착같이 우리 세 딸을 키워오신 것처럼 그들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고,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라면 한국 강남 엄마들의 치맛바람보다도 더한 교육열로 자식의 교육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북한에서 탈북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딸이 8살일 때 혼자가 되었다고 했다. 홀로 딸을 키우고 지켜내기 위해 안 해본 밀수가 없을 정도로 중국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북한에서 잡아다 밀수를 했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까지도 무릅쓰고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여자의 몸으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험한 일들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했던 것은 자식을 키우기 위한 모든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라고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그들 중 어머니와 같이 탈북해 남쪽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았다. 이들과 달리 어머니를 북한 땅에 남겨두고 남쪽으로 탈북한 사람들은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사는 것은 두 번째고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큰 축복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에게도 사실 북한에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25년 전인 1991년 초 남북체육회담에서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그 첫 성과로 그해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고 '코리아'란 이름으로 출전했다. 단일팀은 45일에 걸쳐 함께 훈련하고 경기에 나서 여자팀이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극적으로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그때 그 모든 어려움을 함께하고 시상대에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던 그 친구들이다.

남북단일팀으로 뛰었던 때로부터 벌써 25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그 기억은 내 인생에서도 잊지 못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북한에 두고 온 사람들을 얘기하는 탈북민 틈에서 나 또한 그리운 친구들을 뼈에 사무치게 떠올렸다. 그때 한팀으로 뛰었던 남과 북의 여자 선수들은 모두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그리운 친구요 동료였다. 지금은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그 자녀의 밑거름이 되고 있을 터이다. 탈북민들이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처럼 나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한 번은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그 어떤 곳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멀리만 느껴지는 이분희, 유순복 그 친구들을 꼭 한 번은 만나고 싶다.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 한 공기를 그 친구들과 꼭 같이 나눠 먹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하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얘기들을 꼭 털어놓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탈북민들에게도 가족과 다시 만나는 그날이 반드시 오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한국마사회 탁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