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온 나라를 들쑤셨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죄라면 너무 솔직했다는 점이다.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등 그가 쏟아낸 주옥(?) 같은 소신은 우리 사회 상위 1%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을 터. 누가 뭐라든 상위 1%의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될 일인데 본심을 내뱉은 죄 치고는 억울했을 법도 하다.

이번엔 나 전 정책기획관의 솔직함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발언이 나라를 또 한 번 들썩이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으로 시끄러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20) 씨가 2014년 SNS에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글 때문이다. 정 씨가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이후 특혜 논란이 확산될 무렵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돈도 실력이야…남의 욕하기 바쁘니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며 격한 어조로 솔직함을 거침 없이 드러냈다.

이 나라의 수많은 흙수저가 정 씨의 발언에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분노의 이면에는 정 씨가 너무 당당하고 그가 말한 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긴 해도 너무 솔직하게 까발린 게 나 전 기획관처럼 죄라면 죄인 것이다.

무엇보다 그 어린 나이에 '돈도 실력'이라는 혜안(?)을 가졌으니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에서 세습자본주의를 역설한 학자 토마 피케티(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도 울고 갈 일이다. "실력주의 시대가 가고 금권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피케티의 예측을 앞서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금수저로 태어난 게 죄일 수는 없다. 우리의 재벌 2세 등 재력가 자녀들이 가끔 일탈행위로 비난받고 있지만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탈이야 어느 사회든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고작 스무 살도 되지 않은 학생이 욱하는 마음에 내뱉은 말에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땅의 흙수저들이 분노하는 것은 최순실 씨를 둘러싼 의혹과 그 딸의 발언에 우리 사회의 온갖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선 실세의 권력과의 결탁, 특혜 입학 등 불공정한 교육 현실, 금권지상주의, 나아가 뒤틀린 자식 사랑까지, 모전여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