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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수가 유발하는 심리적 왜곡 /윤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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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10-18 19:19:5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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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를 운전하며 길을 가는데 도롯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그냥 지나쳐버리면 그 사람은 죽을지 모르고 그를 태우게 되면 중요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 윤리적으로 판단하면 당연히 중상자를 차에 태우고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가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최근 의식을 잃고 쓰러진 택시기사의 사망과 관련하여 택시를 탄 승객의 '나 몰라라' 식 행위가 지탄이 되었다. 지난 8월 25일 대전에서 해외골프여행을 나가던 부부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운전기사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비행기 시간이 늦어질 것을 우려하여 차 뒤 트렁크를 열고 골프백을 꺼내 그대로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9월 30일 서울에서는 택시기사가 운전 중 갑자기 의식을 잃어 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량과 부딪히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택시 승객은 운전기사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아니하고 사라졌다. 두 사건 모두 주변에 있던 행인들에 의해 경찰에 신고됐다.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신고할 수 있었다고 승객들은 항변 할지 모르겠으나 심장마비 환자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즉시 119에 신고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비정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란 어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구조 의무를 지는 법이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준 성경의 사마리아인 이야기에서 유래한 법으로 입법화하기 위하여 국회에서 곧 논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도울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사안이 아니라 무조건 구조 의무를 져야 한다.

언젠가 필자는 KTX를 탔는데 응급호출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한 사람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열차 내에 의사가 있으면 급히 와 달라고 했다. 비몽사몽 졸고 있다가 해당 칸으로 달려갔다. 몇 칸 떨어져 있는 그곳으로 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왜냐하면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보니 인턴시절 이후 응급처치상황을 맞이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해당 칸에 도착하니 다행히 환자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였으며 극심한 위경련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같은 경험을 한 적 있다며 환자는 자신의 가방에서 응급약을 꺼내달라고 하여 그렇게 해 주었다. 곧 한 사람의 의사가 더 나타났다. 하지만 그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돼 의료진의 도움은 불필요했다.

사람 심리 중에는 묘한 면이 있다.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도 목격자가 여럿 있으면 자신이 적극 나서기보다 타인에게 미루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심리를 대변하는 유명한 사건이 제노베스 살인사건이다. 뉴욕 퀸스지역 주택가에서 살던 이 여성은 도로에서 장시간에 걸쳐 괴한의 칼에 찔려 죽어갔다. 주변에 있던 여러 사람은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당시 경찰 조사에 따르면 38명의 목격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국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제노베스 살인사건은 사고 피해자를 둘러싼 인간적 환경에 따라 참으로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사람은 주어진 상황이 애매모호하여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는 대부분 타인에게 미룬다는 것이다. 일종의 '방관자 효과'이다. 사람들이 함께 있게 되면 위기에 처해진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분산되어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겠지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가난한 이를 돕기 위한 기부 요청 때도 심리적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면 불확실성이 감소되어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게 한다. 가령 아프리카에 기근이 들어 수십만 명의 어린이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하는 경우보다 아시아의 한 지역에 사는 다섯 살 여자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사진을 보여주면 기부액수가 더 커진다. 한 사람의 생명이든 다수의 생명이든 생명의 고귀함은 똑같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볼 때 여러 사람보다 한 사람을 살리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판단이 기부의 분위기를 지배한데서 기인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오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삶이 비록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비이성적인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인간 심리의 숨은 왜곡을 성찰해 필요가 있겠다.

부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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