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일종의 배틀(battle)이다. 사전적으로 토의는 특정 사안을 두고 협의를 통해 합일점을 찾는 것을 말한다. 반면 토론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자기 주장을 펼쳐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토의는 결론을 전제로 하지만 토론은 우열을 가리는 게 기본 목적이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와 달리 둘 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게 사실이다.

어쨌든 토론은 배틀이라는 성격 때문에 대결 구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게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토론은 종종 산으로 향한다. 말 꼬투리 잡기에다 인신 공격까지 겹쳐 나중에는 정작 토론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기 일쑤다. 한때 유행했던 '맞짱 토론'이나 '끝장 토론' 등의 용어에서도 대결 구도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토론이 본연의 긍정적 역할보다 부정적으로 우리에게 비치는 건 주로 정치와 연관돼서일 터. 도 아니면 모인 정치의 속성상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한 방을 노린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특히 정치 토론이 TV와 연계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 강해졌다.

이런 무리수는 때로 역효과를 부른다. 4년 전 우리나라 대선 TV 토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독설이 그랬다. 당시 박근혜 후보를 향해 "당신을 떨어뜨리려 나왔다"는 한마디는 토론에서 열세이던 박 후보에게 오히려 동정 여론을 조성했다. 하긴 이 정도는 양반이다. 2012년 그리스에서는 2차 총선을 앞둔 TV 토론 생방송 도중 한 정치인이 느닷없이 여성 의원에게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나마 점잖다던 미국 대선 2차 TV 토론에서 목불인견의 막장 드라마가 연출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음담패설 녹음파일 등을 공격하자 도널드 트럼프는 빌 클린턴의 성추문을 물고 늘어졌다. 무대 등장 때부터 두 사람은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특유의 끼어들기와 막말로 힐러리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힐러리가 상대적으로 나았다고 하지만 낯뜨거운 90분의 설전을 두고 언론은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토론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 대선 TV 토론마저 막장이니 우리는 그나마 낫다고 위안을 해야 하나. 하지만 안심하지 말 일이다. 막장 토론의 근본은 배틀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내뱉는 앞뒤 없는 막말이다. 대선을 1년 여 앞둔 우리 정치판에 막말이 점점 활개치는 요즘을 보면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