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에반스·송강호 주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인간의 욕심과 무지로 인해 지구온난화를 초래했고 그것을 바꾸고자 발명한 인공냉각제로 인해 오히려 지구의 멸망이 초래된 어느 한 시대. 지구상 마지막 생존공간인 열차가 지구 전역을 돌고 돌고 또 도는 중 꼬리칸 하층민들이 봉기해 기차의 엔진을 장악하고 기차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 앞칸으로 질주하면서 생긴 이야기다.
열차라는 공간은 인류의 발달사를 의미하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칸으로 분리된 공간은 계급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꼬리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일으킨 폭동은 알고 보니 인구수 조절을 위한 앞칸 지도자의 큰 그림 내 계획이었다. 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균형'이 중요한데, 한정된 공간과 자원 앞에서 인구수 조절은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이 설국열차는 각자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로 인해 유지된다고 앞칸의 리더는 이야기한다. 앞칸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없이 향락에 취해 살고 꼬리칸 사람들은 열차를 나가면 죽는다는 불안과 고통에 떨면서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폭동의 리더인 주인공조차 혁명이 성공한들 결국 같은 시스템(열차) 내에서 쳇바퀴 돌 듯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회의를 가질 때 열차 안이 아닌 열차 밖을 내다보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설국열차'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규모 5.8의 지진으로 인해 발밑이 흔들리면서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고정관념 역시 흔들리던 때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자 해도 알 수 없었던 그 몇십 분 공포의 시간이 국민에게 주는 의미는 대단했을 것이다.
이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던 이도 거의 없고 이런 지진에 대비한 시스템도 부재한 현실에서 '열차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이도 없이 우리가 설국열차를 타고 무한정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1997년 IMF 위기 또한 외환·금융위기의 징후와 실물경제 인프라의 취약함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고, 위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맞은 국가부도 사태였다. 가까이는 서해와 한강을 잇는 운하를 건설해 관광·물류 혁신을 이루겠다면서 무려 2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경인아라뱃길의 위기나 4대강 사업 이후 녹조 심화 등 생태계 변화 등도 바로 코앞만 보는 '협치'의 산물이 아닐까?
망망대해에서 선원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떠 있는데 서로 네 탓, 내 탓 하는 한진해운 사태도 국민들이 보기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인사가 정부에도 기업에도 없다는 사실을 의미해 큰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다들 점쟁이도 아니고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왜 예측하지 못했느냐고 모든 일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혜안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 필요한 것이고 그들의 의견을 조합·해석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정책가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도 부럽지 않을 엄청난 힘이다. 그 힘으로 권력과 부를 거머쥘 이도 있을 것이고 그 힘으로 미래 후손을 위해 지구를 위해 힘쓰는 이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작게는 한 개인이나 가정의 삶을 계획하고 이끌어나가는 데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국가의 정책, 기업의 경영에서 큰 축을 담당하게 된다. 한 기업이 더 큰 성장을 일구어내느냐, 도태되느냐도 결국 이 미래를 보는 힘에 의해 좌우된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IT(정보기술)가 발달함에 따라 미래 현상을 예측하는 것은 이제 더는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대충 때려 맞추는 것이 아닌 객관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아직 위기를 감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에 관한 인프라 구축, 인재 육성, 무엇보다도 현재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덕목이 많이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또 미래예측지수나 자료들이 있다고 해도 한 특권층에만 공유되거나 자료의 해석에 아전인수할 전문가들만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것이다.
현 세대는 살아남아서 설국열차를 타고 돌고 도는데 당장 다음 세대는 그 열차마저 부서지고 타버리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 열차 내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게 아니라 열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